▲ 김형중 경제부국장 |
행복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에 차지 않거나 모자라는 것이 없어 기쁘고 넉넉하고 푸근함, 또는 그런 상태’라고 적시돼 있다. 행복의 척도는 철저히 개인적이어서 다른 사람이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것에도 본인은 느낄 수 없는 경우도 많다. 행복에 대한 개인적인 편차가 매우 크다는 것이다.
일례로 미국의 한 기관에서 돈에 관련된 행복도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인 적이 있다. ‘당신은 얼마의 주급( 미국은 월급이 아닌 주급개념임)을 받으면 행복할 것 같으냐’는 질문에 50달러의 주급을 받는 이는 100달러의 주급이면 행복할 것 같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또 100달러의 주급을 받는 사람에게 똑 같은 질문을 던진 결과, 역시 2배정도인 200달러 정도면 행복할 것이라고 답했다. 200달러, 300달러를 받는 사람들도 역시 2배정도면 행복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그러나 주급 500달러 이상의 고액자들은 2배가 아닌 3배이상의 돈 이어야만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또한 그 이상의 고액 주급자들은 얼만큼의 돈으로는 행복감을 느낄 수 없을 것 같다는 답도 나왔다고 한다. 사람의 욕심과 행복은 반비례하나보다.
이 설문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행복의 척도를 돈으로 가름할 수 는 없겠지만 이들이 보여준 결과는 개인적인 욕심이 행복감에 깊이 관여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행복은 자신의 마음과 긍정적인 사고에서 온다고 본다.
암 투병중인 한 70대 노인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 노인에게는 아들이 둘 있다. 두 아들은 암으로 투병중인 아버지를 극진하게 모시려는 마음은 있다. 하지만 암 환자가 대부분 그렇듯이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요인으로 날로 쇠약해지는 아버지를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날부터 아들들에게는 좌우명이 바뀌었다. ‘내일은 없다. 오늘만이 최선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하고 아버지와 평생 나눈 대화보다 기간은 몇 개월이지만 암투병중에 나눈 대화가 더 많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고 아버지의 병세도 호전되고 있어 최근 들어 더욱 행복함을 느낀다고 전언했다.
아직 완쾌단계는 아니지만 아버지의 병세가 호전되고 며느리와 아들들의 관심이 이 노인에게도 행복감을 가져다 준 것이다.
이 노인에게 가장 부러웠던 것은 밥을 맛있게 먹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가지 더한다면 항암제를 맞지만 아픈 곳이 덜 아팠으면 하는 것이다. 노인의 행복은 덜 아픈 곳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숨을 쉬고 있다는 것조차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도 이 노인의 이야기는 해피엔딩이다. 암병동에 있다보면 별일이 다 있다. 긴 투병생활로 인한 병원비 때문에 자식간에 불화가 생기고 걱정이 생기게 마련이다. 어떤 이는 돈은 많지만 병세가 악화돼 결국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암이 발전된다. 이들에게는 행복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생각하기 나름이다.
영화 ‘우주전쟁’에서 외계인의 습격을 받는 것처럼 우리사회는 이미 경제와 돈이라는 무서운 외계인에 발목을 잡혔다. 돈에 의해 웃고 울고 살고 죽고 한다. 경제의 노예가 된지 오래며 치열한 사회 경쟁에 익숙해져 있다.
이로 인해 우리들은 아들·딸을 전사로 만들기 위해 각종 사교육비를 처들여가며 공부시키고 때론 심한 질책을 하면서 살고 있다.
가끔은 이를 견디지 못한 아이들이 자살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기도 한다. 살아 숨쉬고 사회일원으로 일하는 것이 아름답고 행복한 것임을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얼마나 그들을 위해 부모들이 노심초사하면서 키우는지 알려야 한다. 행복은 작은 감동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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