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일으킨 태평양전쟁 때문에 한국인 148명이 전범으로 처벌받았고 그 가운데 23명이 사형을 당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그 피해자들은 아직 일본 정부를 상대로 외로운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이 책은 1990년대 신문사 도쿄 특파원 출신인 저자가 일본 근무 중 태평양 전쟁 재일 한국인 전범 출신자 모임인 동진회(同進會) 회원들이 50년이 넘도록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벌이고 있는 보상 투쟁을 기자의 감각으로 고발한 논픽션이다.
일본은 전쟁 중 미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호주 등 수십만명의 연합국 포로가 붙잡히자 1942년 8월에 식민지인 조선과 대만 청년들을 감시원으로 징발해 동남아시아 각지의 전장에 마련된 포로 수용소에 보냈다. 영화 ‘콰이강의 다리’로 유명한 태국 지역에서는 콰이강 철도공사에 수많은 연
합국 포로가 강제 노동에 동원돼 “침목 하나에 사람 하나가 죽었다”는 말이 생겼을 만큼 혹독한 강제노동에 시달렸다.
이같은 전쟁 속에서 그들을 지휘 감독해야 했던 한국과 대만인 감시원들 다수는 전후에 전범으로 몰렸다.
이 책에는 유기징역형 복역자가 사형 집행을 앞둔 동료들에게서 받아 보관해 온 옥중 절필 사본이 처음 공개돼 화제가 되고 있다. 저자는 책에서 교수형 또는 총살형으로 이국 땅 옥중에서 짧은 생애를 마감한 사형수들이 모두가 억울한 심경을 토로하면서 ‘조금만 이 세상에 더 살고 싶다”고 호소했다고 적고 있다.
저자는 기록들과 생존자들의 증언을 볼 때 연합국 전범 재판이라는 것이 보복성이 강한 ‘감정재판’이었다고 지적한다. 고발장도, 고소장도, 증거도, 변호인도 무시된 형식만의 재판에서부터 피해자의 손가락질 한번으로 기소되는 ‘손가락 재판’의 실태, ‘뺨 한 대에 징역 10년’이란 말로 상징되는 감정재판이었다며 그 실상을 수록했다.
“개화기 조선, 친미 개화파는 수구적 친미파”
박노자. 허동현교수 팽팽한 토론
2년 전 우리 역사 최전선에서 보수와 진보라는 틀을 통쾌하게 깨트리고, 열린 대화와 토론의 장을 보여주었던 박노자·허동현교수가 이 책을 통해 다시 만났다.
이번엔 100년 전 조선을 둘러싸고 패권 경쟁을 벌인 열강의 문제를 검토하면서 개화기 조선의 지식인들이 열강을 어떻게 인식했느냐에 초점을 맞춰 명철하고 다각적인 분석과 과거와 오늘을 꿰뚫는 통찰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전작에서 유쾌하고 진지한 역사논쟁에 많은 독자들이 뜨거운 관심을 보였으나 한편 솜방망이 주먹을 날리는 양 점잖다는 일각의 비판도 인식한 탓 인지 두 교수의 주고받는 품새가 한층 날카롭고 깊어졌다.
특히 박 교수는 이상적 척도를, 허 교수는 현실 적 잣대를 쓰는 데서 두 사람 사이에 견해 차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박 교수는 과거 친미 개화파가 남긴 역사적 오점을 거론하면서 오늘날 이라크 전쟁을 옹호하고 한국의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몰려 하는 것은 수구적 친미파라며 거침없이 비판한다. 이에 대해 허 교수는 미국의 장점을 도입하려 한 당시 친미 개화파의 선택은 탁견이었다고 반박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침략자의 민족주의는 가해자의 칼날로 기능했지만 피해자의 민족주의는 자신을 지킬 최후의 방어수단이었다는 점에서 이 둘을 동일선상에 놓고 재판할 수 없다는 반론을 든다.
그러나 두 사람의 주장은 팽팽한 평행선을 달리다가도 오늘날이 열강 쟁패의 시대라는 점과 그 열강들에 에워싸인 한반도의 미래를 걱정하고 대책을 강구하는 점에서는 한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이 책의 특기할 만한 점은 각 장 말미에 독자를 대신해서 두 교수에게 한 걸음 더 나아간 질문을 던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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