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세상을 살다보면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할 때도 있고, 또 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비단 그것이 인간의 도리와 경우, 그리고 명분 때문에 하지 못하고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혹시 누가 엿듣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이 말이 퍼지게 되면 그로부터 오는 피해가 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조심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요즘 나날이 언론을 통해 전해오는 과거 국가정보기관으로부터의 도청 사실이 밝혀지면서 내심 마음을 졸이는 사람들이 많다. 도청을 하고 또 도청을 당한 당사자 모두가 이번 도청 사실이 밝혀지게 되면 이런 저런 연유로 인해서 아마도 큰 책임과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무슨 연유에서 불법적인 도청을 해야만 했는지는 아마 대부분의 국민들이 수사기관의 수사결과를 기다려 보지 않더라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도청한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도 이미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그 실태가 거짓 없이 밝혀져서 이런 불법적인 행위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관련자들에 대한 책임을 묻고 또한 제도적으로 보장되기를 원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도청으로 인하여 가장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곳은 바로 정치권이 아닌가 싶다. 도청을 하게 된 원인도 그렇고 또 그것으로 인하여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될 곳이 정치권이기 때문이다.
만약 도청을 한 당사자가 밝혀져서 도청의 원인에 대한 책임을 파헤치게 될 경우도 그렇고 또 도청한 내용이 밝혀지게 된다면 일파만파의 폭풍이 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항간에서 나도는 소문은 바로 이번 도청으로 인하여 정치권의 정계개편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불행한 사태다. 그 동안 정치권이 국민의 대표로서 국민을 위하여 일한다고 하면서도 뒤로는 수많은 불법적인 행위와 암투 그리고 검은 거래(?)를 해 왔다는 것을 이번 도청 사건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정치를 한다는 것이 이다지도 부정적이고 불법적인 행위를 해야만 가능한 것인지 도무지 일반 국민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늘 말로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한 구호는 말 그대로 구호에만 그치고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만들어 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에 내던져진 국민은 과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생각하면 답답하기만 하다. 가정과 직장, 그리고 음식점, 극장, 은행 등 사회생활을 하면서 반드시 가야하고 또 다른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일반 국민으로서는 앞으로 어디를 가든지 도청의 공포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어디에서나 나의 행동과 말을 누군가가 보고 듣고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 공포 속에서 과연 국민의 권리와 사생활은 보호받을 가치도 없고 보호 받을 수도 없다는 것인지 이번 도청 사건을 보면서 다시 생각해 본다.
특정인을 위한 그리고 특정의 목적을 위한 불법적인 감시와 도청이 보편화되어 일반 국민의 생활을 침해한다고 하면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국가의 안위와 관련되어 불가피하게 감시와 도청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엄격한 기준과 절차를 거쳐서 행해져야 할 것이며, 그것으로 인하여 나타날 수 있는 피해는 분명하게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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