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면회는 환자의 안정을 이유로 허락되지 않았다. 생사를 확인하기까지 일주일, 하루하루가 얼마나 걱정이 되었는지 모른다. 담당 간호부장을 통해 김상병이 건강하게 회복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겨우 안심할 수 있었다.
병실에서 처음 만난 김상병은 얼굴도 잘생기고 의젓했으며 몸이 아픈데도 부모님과 동료들을 먼저 걱정하는, 무척 사려 깊고 단정한 군인이었다. 우송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작년에 입대했고 옥천고등학교 편집부장 출신으로 광고에 관심이 많은 스물한 살 청년이었다. 김상병의 부모님 또한 너무 순수하고 착한 분들이었다.
김상병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비슷한 시기에 큰아들을 군대에 보낸 같은 아버지의 심정으로 어떻게든지 김상병을 도와야 되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김상병을 만나고 와서 윤광웅 국방부장관 앞으로 편지를 썼다. 군의 규율과 원칙 안에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김상병이 완치되도록 군이 최선을 다해줄 것과, 제대 후에도 불의의 사고로 다친 그가 적절한 대우를 받길 희망한다는 내용이었다.
나 또한 김상병이 제대하고 복학해서 졸업하고 사회에 적응할 때까지 열과 성을 다해 김상병을 돕겠노라는 약속도 했다.
나는 김상병을 통해 GP총기사건으로 죽은 젊은 넋들을 본다. 물에 빠진 전우를 구하기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무거운 군화를 신고 강물에 뛰어들었을 아름다운 아들들의 전우애를 본다. 그래서 안타깝고 눈물이 난다.
세상은 이들처럼 묵묵히 그리고 희생하며 사는 사람들에 의해서 나아간다. 이들이 바로 대한민국의 희망이다.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은 인류를 구하는 것이다.’
탈무드에 나오는 말이다. 국민들 사는 것이 너무 힘들다. 사는 것이 힘들고 팍팍해서 우리네 일상은 너무도 고달프지만 그러나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들이 있다. 김상병이 그렇다고 나는 믿는다. 그를 기억하는 것은 어른들의 잘못과 상처를 기억하는 것이다. 이 시대 이 사회가 지켜가야 할 최소한의 가치요 의무인 것이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맷 데이먼처럼.
지난 7월 말경 김상병이 더 건강해져서 대전국군병원으로 후송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날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목소리의 김상병 아버님과 통화하면서 가뭄 끝의 단비처럼 가슴이 후련해졌다.
대전국군병원 302동. 나는 35년 만에 위문편지를 쓸 것이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세간에 베스트셀러 라고 하는 최인호의 ‘유림’이란 책을 사들고 김상병을 보러갈 것이다.
월요일 아침, 수줍은 듯 겸손하게 땅을 향해 아래로 피는 고추꽃처럼 정치가 국민의 아픔을 함께하는 그날을 위해 구두끈을 질끈 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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