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9일 저녁 농촌마을인 대전시 유성구 원정동의 산기슭에 고즈넉하게 자리한 한 채의 건물. 땅거미가 자욱히 내려앉으면서 어느새 주변은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전날 밤 장대비같은 폭우가 쏟아져서 일까. 어둠이 몰고 오는 고요함과 비가 지나간 뒤 느껴지는 스산함이 왠지 모르게 당장 건물에서 무엇인가 뛰쳐 나올 것 같다.
불빛도 안보인다. 이때 7∼8명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아이들이 나무와 수풀이 우거진 건물 앞 화단 옆을 조심스레 지나간다. 수풀 속의 풀벌레와 학교 정문 앞에 있는 냇가의 물소리, 멀리서 들리는 개구리의 울음소리만이 고요한 정적을 깰 뿐이다. 어둠에 약한 탓인 지 아이들의 어깨는 더욱 움츠러 들었다.
그 때 아이들의 시선이 고정됐다. 바로 옆의 나무에서 한 마리의 왕거미가 잎새를 쉴새 없이 오가며 거미줄을 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다. 먹이를 잡으려는 거미의 생존 본능때문인 지 거미의 몸부림은 더욱 빠르게 움직인다. 금세 나뭇가지 사이에 가로, 세로 50cm가 넘는 거미줄이 빼곡히 들어찼다. 신기한 듯 아이들은 쭈그려 앉아 거미줄을 쳐다본다. 앉은 채로 거미줄이 보이는 위를 쳐다본다. 그때다. 한아이가 소리쳤다.
“으악, 귀신이다. 귀신이 나타났다.”하얀 얼굴에 소복을 입은 여자 귀신이 거미줄 사이에 보였다. 아이들은 혼비백산해 줄달음 친다.
“오줌쌀 뻔 했잖아요~”
또 다른 한 무리의 아이들이 어두컴컴한 건물 복도를 걸어가고 있다. 한 아이가 중얼거린다. “분위기가 너무 스산해. 뭔가 나올 것 같아.” 아이의 예감이 맞은 것일까. 복도 끝에 갑작스레 하얀 물체가 나타났다. 그러더니 아이들을 향해 걸어온다. 머리는 어지럽게 산발된채 하얀 소복에는 피가 묻어 있다. 아이들은 그녀를 보더니 깜짝 놀란다. 놀라는 것도 잠시“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달린다.
잠시 후 복도의 불이 켜진다. 몇몇 아이들이 소복을 입은 귀신에게 달려간다. 그리고는 묻는다. “당신은 누구세요. 왜 귀신이 됐어요? 귀신은 정말 있나요? ”궁금증을 토해내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자못 진지하다.
청학동 예절서당 귀신체험 담력키우고 두려움 사라져
이곳 산기슭의 건물은 폐교된 원정분교를 임대해 꾸민 청학동 예절서당 대전학당이다. 지금까지의 귀신소동은 청학동 학당이 전통체험 프로그램으로 마련한 코너.
이날 전국에서 찾아 온 120여명의 초·중학생들은 희망자 순으로 귀신 체험 놀이에 직접 참여하고는 신기하고 재미있어 하는 표정을 보였다.
청학동예절서당 대전학당 윤길현(60)원장은“아이들에게 담력을 키워주고 귀신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기 위해 이같은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사람은 근본인 신(神)으로 돌아가는 것인 만큼 귀신을 혐오하면 안됩니다. 다만 신이 무엇인가 뜻을 이루지 못하면 신으로 환생하지 못하고 허공에 떠도는 것이지요.”
아이들도 윤원장의 얘기에 진지한 표정으로 귀를 쫑긋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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