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한 셈이 된다. 모두 11분의 교장 선생님, 12분의 교감 선생님과 근무를 하게 되었다. 스
무 분이 넘다보니 한 분 한 분마다 성품이 다르고 학교를 관리하는 스타일도 달랐다. 야단
을 잘 치시고 말씀을 험하게 하시지만, 험한 말씀 가운데서 직원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묻어나는 분들도 계셨고, 지적이긴 하지만 약간 냉정한 분, 합리적이어서 건설적인 제안을
존중하는 분, 지적이면서도 인간미가 풍부한 분들도 계셨다. 욕심이 조금 과한 분들도 계셨
고, 큰 욕심 없이 학교를 경영하시는 분들과도 같이 근무했다.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분들은 단점을 조금 심하게 드러낸 적도 없지는 않았지만, 내가 참
인복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복보다 더 큰복은 없다고들 말한다.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성격이 특이한 관리자들과 가족보다 하루 중 더 오랜 시간을 같이 보냈
다면 얼마나 괴로웠을 것인가. 나처럼 참을성이 없는 사람으로선 감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고마운 분 때문에 남몰래 눈물을 훔친 적도 있었다. 1992년 있었던 일이다. 나는 그 때 공주
시내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아침마다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울며불며
떼를 쓰는 우리 큰애에게 죄를 짓는 것만 같아서 병설유치원에 넣고 데리고 다니게 되었다.
그 해 여름, 아이가 장염에 걸렸다. 아이를 집에 홀로 둘 수가 없어서 학교 양호실에 눕혀놓
았다. 아무것도 먹지 않은 아이가 걱정이 되어서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양호실로 갔다. 살며
시 양호실 문을 여는 순간 교장선생님께서 양호실 침대에 걸터앉아 우리 아이를 앉혀놓고
꼬모를 떠 먹이고 계시는 모습이 보였다. 말씀이 적고 감정표현을 잘 하시지 않는 교장 선
생님께서 부하직원의 어린 딸자식을 달래가며 꼬모를 떠 먹이고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나
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그 해에 공주시 학력경시대회가 처음 열렸는데, 내가 지도한 아이가 수학과에서 금상을 타
게 되었다. 명색이 학력경시 지도를 하느라 다른 선생님들이 퇴근할 때 같이 퇴근할 수가
없어서 언제나 나의 퇴근 시간은 6시 30분이었다. 그래도 힘든 줄 모르고, 짜증이 나지 않았
던 것은 너무나 인간적이었던 교장 선생님 때문이었다.
현재로선 거의 실현될 가능성이 없어 보이지만, 사람의 일이란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다
고들 하니 미리 김칫국부터 마셔본다. 만일 상전이 벽해가 되어 나처럼 어리석고 부족한 사
람도 관리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나는 무엇보다도 마음이 따뜻한 관리자가 되기 위
해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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