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성남 본사 주필 |
계룡산은 우선 산이름부터 범상치가 않다. 닭(鷄)과 용(龍)이라는 두동물의 이름을 붙였는데 한국의 많은 산중 동물의 이름이 산의 명칭이 된 예가 흔치않다고 한다. 그런데 닭은 새벽을 알리는 일종의 선각자에 대비되는 동물이며 용은 왕이나 아주 고귀한 위치에 있는 사람을 상징하는 상상의 동물이다.
따라서 계룡산은 새로운 시대의 지도자를 그리는 그런 바람을 담은 산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면서 급기야 조선시대 개국과 함께 왕도(王都)로 주목받기에 이르렀다. 정치적인 의미뿐 아니라 민간신앙의 중심에도 계룡산이 있었다. 불교문화의 중심지가 계룡산이었던 것은 물론 무속인들도 이곳으로 모여들었고, 조선시대에는 분청사기의 대표적 생산지로 손꼽히던 곳이기도 했다.
이처럼 유서깊고 신비하기까지 한 계룡산은 일제의 천황봉 훼손을 시작으로 최근의 각종 개발에 이르기까지 숱한 수난을 겪게 된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 스스로의 손에 의해 계룡산 곳곳을 마구 파헤치고 훼손한다는 사실이다. 지금의 동학사 입구에 있는 주차장 부지는 분청사기 도요지로 추정되는 지역이다.
이런 이유로 이곳에 주차장이 들어서서는 안된다는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반대가 있었음에도 행정당국은 아랑곳없이 주차장을 만들어 중요한 문화적 유산을 사장시키는 결과를 빚었다. 그러나 이 주차장 건설은 시작에 불과하다. 지난해 9월 장군봉 자락 아래에 자연사 박물관이 들어섰다. 환경단체의 반대와 공무원 뇌물수수파문 등으로 사업이 중단됐다 반복되는 우여곡절 끝에 일대 산림을 파괴하는 공사를 거쳐 개관한 것이다. 꼭 그 자리여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아울러 자연사박물관이 있는 학봉리 온천지구도 식당과 모텔이 들어서면서 계룡산을 찾는 외지인을 맞이하고 있다. 민족의 영산이라 불리는 이곳 계룡산 입구가 러브호텔이 먼저 반기는 모습을 보면서 외지인이 어떤 생각을 할지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러나 이 또한 국도1호선 공사의 파괴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연장 10.6㎞의 이 도로는 왜 만들어야 하는지 짐작이 쉽지 않다. 이미 있는 도로만으로도 교통수요를 충족할텐데 계룡산의 자연환경을 파손하면서까지 공사를 감행하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다.
필자는 지난 2003년 노은지구에 들어선 월드컵 경기장이 계룡산의 기후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를 한 스님을 통해 들었다. 아무 시설도 없던 노은지구에 아파트와 월드컵 경기장이 들어서면서 한여름의 계룡산 기온이 과거보다 높아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계룡산 인근은 물론 계룡산 산자락 곳곳이 파헤쳐지고 자연환경이 훼손되는데 따른 후유증은 결국 이 지역민에게 돌아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호남고속철 분기역 결정에 따른 계룡산 훼손 우려는 그래서 이 지역민의 지대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민족의 명산 계룡산이 훼손되지 않도록 정부와 주민 모두의 총의가 모아져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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