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사람의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아주 낮은 소리를 내 사람이나 동물의 근육을 진동시켜 다리를 부들부들 떨게 하고 얼어붙게 만든다는 것이다. 호랑이 울음소리를 들으면 몸이 들썩이며 얼어붙는듯한 느낌을 갖는 이유는 온몸을 울릴 정도의 커다란 소리때문이라기보다 인간에게 들리지 않는 초저주파 효과 때문인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학교에 있다 보면 학생들과 버스를 타고 놀이에 나서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목격되는 현상이 하나 있다. 소위 차 안의 분위기다. 처음에는 노래도 없고 썰렁한 분위기에 나서는 학생도 없이 맨송맨송하다. 그러다 점차 한두 명이 나서고 자연스레 분위기가 일다 보면 모두가 일어나 목청껏 합창을 하는 것이 젊은이들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분위기가 영 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선배에게 얼차려를 받았다거나 서로 말다툼을 한 학생이 섞여있는 경우가 그렇다. 그런데도 놀아야 한다는 중압감이 있는 데다 지나가는 옆 차에서 시끄럽게 놀아 대는 소리라도 들릴라치면 차 안의 분위기는 일 순 바뀌게 된다.
보통 힘 있는 선배가 한마디 한다 “야, 분위기가 이게 뭐야?”, “빨리 안 놀아?” 그러면 중간쯤에서 누군가 한마디 한다. “맞아, 재밌게 좀 놀자, 우리만 이게 뭐니?” 그래도 분위가 썰렁하다. 한참을 가다보면 여기저기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에이, 우리만 이게 뭐야 딴 애들은 재밌게 놀고 있구먼. 우리 애들은, 왜 그리 놀 줄도 모른다니?”
점차 불만의 소리가 높아져 이내 싸우는 분위기가 되고 만다. 그날 여행은 그렇게 망친다. 놀자고 소리치는 사람은 이미 놀지 못하는 사람이다. 분위기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있다. 누군가가 조용히 나가야 한다. 물론 나가기 전에 준비가 필요하다 ‘내가 나서면 다음은 너야’ ‘그리고 다음엔 너희 들 춤이다 알았지?’ 다른 친구들에게 미리 약속을 받아 놓아야 한다. 그런 연후에 자신부터 노래하면 된다. 노래는 못 불러도 좋다. 아니 못 부르는 것이 더 좋다.
서울대 논술이 정치권의 화제가 되고 있다. 본고사냐 아니냐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법들이 재미있다.
정치인들은 큰 소리부터 친다. ‘초동진압’ ‘절대불가’ 심지어 ‘조진다’는 비속어까지 써가며 소리를 높인다. 버스에서 동료들에게 왜 못 노느냐고 소리치는 학생과 같다. 그것도 힘깨나 쓰는 학생 말이다. 서울대의 반응은 정 반대였다. ‘조용히 하라고 소리치는 사람은 이미 조용히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엄하게 훈계부터 했다.
문제만 생기면 몸부터 날리고 과격한 용어를 남발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경계가 됐기를 바란다. 큰 소리만이 능사가 아니다, 인간의 귀에 들리지 않는 작은 소리도 얼마든지 사람의 오금을 저리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우린 알아야 한다.
버스 안에 탄 사람들이 모두 한 식구라는 사실도 잊은 우리들이 아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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