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우리 정치가 삼류다”라는 뉘앙스의 말을 했다가 곤욕을 치른 기업가가 있었다. 그는 모든 것은 변하고 있는데, 정치만이 유독 권위적 질서와 틀 속에서 앉아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려는 우매함을 꼬집은 것이다.
정치가 국민을 이끄는가, 국민이 정치를 이끄는가? 이 물음에 대한 정답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치가 국민을 이끌지 못하고, 국민이 정치인들을 이끈다면, 문제는 심각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정치가 생산적인가? 정당 운영에 있어 네거티브 전략이 포지티브 전략을 압도하니, 생산적일 수 없다. 우리의 정치적 화두는 ‘발목잡기’이다.
여기서 좀 더 발전된 전략은 ‘저격술’이다. 더 나가면 일단 폭로하여 마녀사냥터로 내모는 것이다. 이를 기업 경영에 대비시키면 반드시 망하는 기업의 징후들이 된다. 그러니 되에 우리 정치가 삼류라는 말은, 봐줘도 너무 심하게 봐준 말이다.
훌륭한 사람, 훌륭한 조직은 자신들의 길을 간다. 내공을 쌓고 학습을 통해 자생력과 경쟁력을 기른다. 따라서 이런 사람, 이런 조직은 변화에 적응함은 물론, 변화를 주도하고, 지배한다. 때문에 시대의 흐름에 무임승차할 필요도, 남의 발목을 잡고 늘어질 필요도 없다.
지금 한국은 정치 패러다임의 전환기에 놓여 있다. 국민의 의식이 바뀌었고, 그리하여 수준 또한 높아졌다. 이를 보는 시각과 이용하는 방식은 둘로 나뉜다. 하나는 이것이 잘못된 것일 수 있어 계몽해야한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이 걸 정확히 간파·인정하여 적절한 시기 또는 결정적 사안에 ‘팻(?)감’으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한쪽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을 부정하는 것이고, 다른 한쪽은 이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모두 옳다고 볼 수 없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올바른 리더이지, 정상배(政商輩)나 게이머가 아니다. 타이르고, 꼬시고, 훈계하여 끌고 다니던 ‘고무신 유권자들’은 이제 없다. 또한 결정적 시기에 올인하는 ‘도박정치’에 더 이상 탄복할 유권자들도 없다.
이제 오로지 정치시장을 지배할 새로운 법칙은 실체 없는 진보·보수, 개혁·수구 따위가 아닌, 공익(公益)으로서의 변화를 요구하는 ‘국민의 힘(people power)’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전의 잣대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논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해 새로운 정치는 진보?보수??잣대가 아닌, 공익의 잣대일 것이라는 얘기다. 누가 국민으로부터 위탁받은 권력을 독단하는가? 누가 사사로움으로 패거리를 짓고 새롭고 참신한 변화의 세력들을 따돌리는가? 누가 이해득실을 따져 나라의 살림을 사적(私的) 소유물로 농단하는가?
국민이 바라는 새 정치는 더불어 함께 하고, 나누는 것이다. 또한, 국민과 더불어 생각하고 국민과 더불어 논의하며 길을 찾아 나아가는 것이다. 또한, 사탕발림 꿈속 정치가 아닌, 이념의 정치가 아닌, 현실의 정치를 구현하는 것이다.
누가 새 정치의 탄생을 폄하하는가? 누가 자연의 이치와 순리에 대고 삿대질을 하며 욕지거리를 퍼붓는가? 기존의 것은 새 것의 탄생에 우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것이 탄생한다면, 이는 기존의 것이 생명을 다했음을 뜻한다. 언제까지 국민을 가르치려만 들고, 국민을 대상으로 도박하려 드는 두 정당만을 믿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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