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배 정치부장 (서울주재) |
만40세, 타관객지 안양에서 당시 정치연령으로 치자면 약관의 나이에 촉망받는 YS의 문하생으로 정치 입문에 성공했다. 재선 뒤 민선 초대 경기지사로서 한때 집권여당의 ‘깜짝 놀랄만한 대선후보’였고, 홀로서기의 시련속에 500만표를 얻은 실전경험도 가진 그였다.
YS의 품을 떠나면서 시작된 그의 정치유전은 DJ에 이은 JP진영에 연착륙하면서 여러 차례 새로운 계기마련을 위한 장구한 모색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오늘날 노무현 대통령과 시퍼런 대립 각을 세우기까지 파란만장한 정치역정과 시련이 한꺼번에 그에게 몰아닥쳤다.
‘독불장군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YS의 전제적 다스림을 단호히 거부하고 3김정치를 극복하고자 자리를 박차고 나선 그였다. 하지만 그 뒤 정치적 행보에 대한 세인의 평가는 그의 결단력이나 정치적 소신과는 관계없이 아직도 차갑기만 하다.
이제 한국정치사에서 ‘IJ 정치’가 끼친 의미는 ‘반면교사’, ‘타산지석’으로 대변되는 교훈적 가치로서 흔적만 있을 뿐이다. 그가 추구하려던 정치적 몸부림과 노력의 가치 모두 날아간 셈이다. 대신 그 실과는 같은 통일민주당 소속의 청문회스타로 화려한 출발을 함께 한 노 대통령이 누리고 있는 것이다.
‘IJ 정치’를 돌이켜 보면, 3김정치의 품에서 낳아 3김정치의 품에서 질 수밖에 없는 호사다마(好事多魔)를 연상케 한다. -집권당 대선 후보가 되고자 여당에서만 두 차례 치른 경선의 뒤끝, -비록 ‘단기필마’일지언정 시련의 길을 자초하고 나선 길을 스스로 접고 어부지리를 안긴 DJ품에 안긴 것, - IJ자신은 새천년민주당의 전국정당화를 이끈 일등공신으로 꼽았지만 DJP공동정부에서 철수한 JP와 충청도 제압을 위한 이이제이(以夷制夷) 방아책(防俄策)차원의 DJ 용인술과 16대 총선결과, - 또한 IJ자신도 기획경선 내지, ‘경선 음모론’을 제기할 만큼 노 후보와 치른 석연치 못했던 당내경선 등은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하지만 무심한 여론과 민심은 분명 희생양인 그를 희생양으로 봐주지 않고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말로 처지를 비유했다. 지난 17대 총선을 앞두고 집중 제기된 월드컵 휘장비리의혹과 대선자금수수의혹은 다행히 최근 법정선고를 통해 겨우 혐의를 벗을 수 있었다. “치졸한 정치보복”이란 그의 주장대로 총선을 통한 정치적 심판에 이은 법적 심판을 통해 새로운 정치적 생명을 얻었다.
최근 정치적 ‘해금’을 맞은 이 의원이 “지역주민의 뜻에 맞게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한알의 밀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향후 자신의 역할과 정치적 행보를 설정하고 나섰다.
영·호남중심의 지역패권주의 정치가 영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IJ정치’의 역할론과 그 방향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독자세력화에는 당장 표밭의 크기가 작아 지역적 한계일 수 밖에 없는 충청세의 결집방안이 최대과제이자, 지역적인 주요 덕목이란 점이다. ‘3김 정치’가운데 ‘JP정치’가 가진 구조적 한계와 생존방식, 그리고 두 차례 대선에서 영남권의 무등을 탄 예산출신의 이회창 후보, 또한 영남에 이어 호남의 무등을 타려다 실패한 이 의원 모두 충청출신 동병상련의 지역적·정치적·시대적 아픔을 남긴 인물들이다.
이 의원의 ‘밀알론’은 그 작고 느슨한 지역성이 갖는 한계 극복을 위한 방안으로 모아져야만 한다. 눈알 만한 지역에서 두 개의 정파가 지역정서를 놓고 다툰다면, 되레 반감만 일 뿐 ‘필패’로 가는 지름길임은 두말할 필요 없다. 때문에 최우선 목표를 ‘지역통합의 정치’에 둬야만 한다. 그 다음 호남과 민주당 동교동세력, 경기권 등 그간 정치적 자산인 여러 경로의 인연을 묶는 ‘지역연합’을 꼽을 수 있다. 그리고 지역간의 균등과 대등성을 담보할 내각제를 포함한 권력구조 재편등 변화가능성 대비한 단계적 접근 등이다. ‘IJ정치’의 허장성세도 결국 충청권이란 내재적 가치에 미흡했던 것은 아닌가. 이에 출발점을 새로 삼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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