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보면 이번 세계편집인포럼의 첫 번째 세션의 토론 주제가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을까?'인 것도 전혀 이례적이지 않다. 개인적으로 블로그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순전히 애들 장난 수준이라 내놓고 자랑할 처지가 못 된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얘기해야겠다.
먼저 직접 블로거가 되어 깨우친 것이 있다. '자기만의 방'이라고 만든 그 순간부터 그곳은 다락방이 아닌 세상을 향해 무한대로 열린 광장이라는 점이다. 나를 위한 베개와 예쁜 진홍색 페튜니아가 있는, 내 책들과 내 삶의 이야기들이 있는, 그 누구도 내 평화를 흔들어대지 않는, 말하자면 '망고스트리트' 식 공간을 꿈꾼 자체가 애당초 무리수였다.
대신에 블로그를 통해 내 욕망이 남의 욕망과 뒤섞이는, 카페나 홈페이지와는 약간 색다른 체험을 하게 되었다. 베이징의 황제와 스스럼없이 만나고 환생한 오드리 헵번과도 시답잖은 대화를 나눈다. 아니면 쇼팽 야상곡을 나직한 재즈 버전으로 들으며 지금처럼 글을 쓸 수도 있다. 이 발전된 형식의 홈페이지에서 인터넷 문화를 이끌어주는 코드를 '리얼'하게 이해한 것도 소득이다.
또 무슨 사고만 터졌다 하면 만화책과 비디오에 혐의를 잔뜩 뒀던 지난날처럼 가상공간과 현실을 분간 못한다고 에두르는 일반화의 오류도 저절로 알아냈다. 문제가 큰 쪽은 아무래도 온라인보다 오프라인 쪽이었다. 사이버공간을 지칭하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에는 벌써 실재성(reality)이라는 말이 내재한다. 현실적 실재가 있는가 하면 가상적 실재도 있다.
어느새 그 속에서 이미지가 텍스트를 압도하는 디카 저널리즘, 멀티미디어 저널리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다. 온라인은 가상공간 아닌 중요한 공론(公論) 마당으로 자리잡았다. 전국민, 전세계인의 사진기자화도 착착 진행 중이다. 보았듯이 런던 테러 현장에서 긴박한 지하철 대피 장면을 잡은 비디오 클립도 시민이 찍었고 생생한 현장사진과 인터뷰까지 블로거들의 것이었다.
이처럼 기자가 따로 없고 마음먹으면 누구나 칼럼니스트인 시대에는 감시자인 빅 브라더가 평범한 이웃일 수 있다. 더불어 주류 언론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풀뿌리 언론사 사장인 이 똑똑한 군중들(smart mobs)과의 공존 방법을 찾는 과제가 주어졌다. 저널리즘의 지평은 더욱더 신뢰성 확보로 귀결될 것이기에 언제까지 면역세포처럼 자기와 비자기만 구분하고 있지는 말아야 한다.
이렇게 말하는 근거는 인터넷의 위력을 깊숙한 현장에서 몸소 실감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블로거가 된 직후에 내 글 '유혹으로서의 하이힐'이 인터넷 초기화면에 오르는 작은 사건이 있었는데 이 일로 짧은 시간에 수천, 수만의 네티즌이 다녀가는 북새통을 경험했다. 미국 언론과 그곳 네티즌까지 들썩인 일명 '개똥녀(Dog Poop Girl)' 논쟁도 별 거 아니구나싶을 정도로 신기하다.
이럴 때 라캉의 비유가 허용된다면, 대중이 진정 원하는 것은 젖가슴(사랑)이지 젖(관능)이 아니다. 사실이기보다 아직은 믿음이다. 몸은 셋방살이 같고 마음은 날품팔이 같은 세파 속에서 가상현실을 증가된 현실(augmented reality)로 변화시키는 일도 의미 있는 과제다. 그래서일 것이다. 블로그를 조심하라는 경계성 기사에 비하면 지하철에 애견 배설물을 두고 사라진 사건이 "인터넷의 힘과 숙제를 한꺼번에 던져줬다"는 워싱턴 포스트의 분석에 더 신뢰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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