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바둑의 고수끼리 대국하는 것을 보면 꽤 흥미롭다. 바둑을 정식으로 배운바 도 없고 초보자끼리 싸움 바둑 두는 수준으로 집식구하고 몇 차례 집 따먹기 하다가 싸운 것이 대국(?)의 전부인 실력이지만 칼날 같이 예리한 일본 기사들을 꺾고 만리장성 같이 두텁고 길다는 중국의 기사들을 허물어뜨리는 우리의 걸출한 기사 제비 조훈현, 돌부처 이창호, 일지매 유창혁, 초부(樵夫) 서봉수…. 이들의 활략 상을 보면 강호에서 호쾌한 무협의 세계를 펼치는 것 같은 신바람에 주제도 모르고 바둑프로를 보게 된다.
그런데 해설자의 말을 들어보면 처음 포석이 매우 중요하다는 설명, 바둑에 문외한인 입장에서 보면 괜히 듬성듬성 서로 딴청부리듯 돌을 놓는 것이 영 답답하고 신통치 않아 보이는 데 돌 하나하나는 판 전체를 내다본 치열한 계산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어찌 보면 그림 그릴 때 기본 구도를 잡는 것 같기도 하고 화면에서 점 구성을 할 때의 구성 원리와 매우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화면에서 하나의 점은 점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나머지 여백 공간에 어떻게 시각적인 힘이 미칠 것인가? 각 점과 점 사이를 연결하는 보이지 않은 무수한 시선은 어떠한 시각을 연출하게 되고 화면 전체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를 세심하게 고려해야 되는 조형 요소인 것이다.
그래서 바둑판은 정사각형의 화면, 검은 돌과 흰 돌은 화면을 구성하는 흑백의 점이라고 가정하고 조형적인 시각에 근거하여 승패를 예측해 보곤 했는데 바둑의 초보 측에도 못 끼는 필자의 우승 예측 적중률이 스스로 생각하기에 만만치 않았다.
그 비법을 공개하자면 정사각형 화면(바둑판)을 구성하는 흑백의 점들이 구성원리에 따라 잘 배치되어 조형적으로 구성미를 갖춘 기사가 우승한다는 것인데, 점들이 중앙에만 모여 있으면 답답하고 화면(바둑판)을 넓게 사용할 수 없으며, 갓 쪽에 치우쳐 있으면 옹색하고 화면(바둑판)의 지배력 약하다. 작은 형태(집)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으면 변화는 있으되 산만하고 실익이 적으며, 큰 형태(집) 하나만 한쪽으로 몰려 있으면 강한 듯하나 변화가 없어 단순하고 외로우며, 만들어진 형태(집)가 들쑥날쑥 요철이 심하면 조잡하고 격이 떨어져 실리가 적다. 따라서 한쪽에 일정한 크기의 형태(집)가 있다면 반대쪽에 이에 상응하는 형태(집)가 배치되어 시각적으로나 세력으로나 균형을 이루고 서로 내응할 수 있어야 화면의 구성이 아름답고 생기가 있으며 이기는 게임이 된다는 것이다.
애기가(愛棋家)들이 들으면 실소를 금치 못할 엉뚱한 상상이겠지만 반상(盤上)의 풍운(風雲)은 조형적으로 보아도 오묘한 구성원리를 가졌음에 틀림없다. 기도(棋道)에 득의(得意)한 분들이 미술작품을 한다면 상당한 수준의 격을 갖춘 작품을 내놓으리라. 도모고금, 도일야(道無古今, 道一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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