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영돈 편집부장 |
지난 1986년 교육개혁심의위원회가 사학발전대책의 일환으로 검토했다가 국민 정서상의 이유로 유보된바 있는 이 제도는 최근 2,3년 전에도 일부 명문 사립대학에서 도입을 적극 추진하려다 여론과 교육부의 강력한 반발로 포기됐던 전례가 있다. 이를 모를리 없는 전국 대학 총장들이 다시금 이를 들고 나온 것을 보면 우리 대학의 어려운 실정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 대학은 다른 나라 대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재정이 빈약하다. 그로인해 세계 유명 대학과 경쟁하는데 제약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은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국·공립대학은 물론이고 국내 200개 4년제 대학중 154곳을 차지하는 사립대학은 그 어려움이 더하다. 재단의 전입금은 미미하고 정부의 지원금은 대학 재정의 5%에 불과하다보니 재정의 70%를 학생 등록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게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더욱이 최근 입학 학생수 감소는 대학 수입 급감이란 직격탄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등록금을 대폭 올릴 수도 없고 보면 요즘 대학가는 말 그대로 죽을 맛일 것이다. 거기에다 지난 4일엔 10개 국립대학이 5곳으로 통합하고 수도권 주요 사립대가 입학 정원을 10%씩 줄이겠다는 내용의 대학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여타 대학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무척 곤혹스런 모습이 역력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빈약한 대학재정 속에 새로운 교육 시스템을 갖춰야 할 대학 관계자들의 여러 생존전략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게다. 충분히 그들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최근 다시 요구하는 기여입학제 허용만큼은 절대 안된다. 이는 우리 교육계 질서를 넘어 우리사회 근간을 무너뜨리는 제도임에 틀림없다. 기여입학제란 결국 돈을 내면 실력이 부족하더라도 대학에 입학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평범한 가정의 자녀는 죽도록 공부하고도 낙방의 고배를 자신의 노력 부족으로 돌리고 있는 판에, 학생 실력이 아닌 부모의 재력 여부에 따라 대학 입학이 결정된다면 너무나도 가혹한 일이 아닌가.
우리나라 학생들은 일류대학 진학이 마치 조선시대 과거급제인양 목숨을 걸다시피 공부하고 있다. 때문에 중고등학교 시절 아무리 성적이 좋았다 하더라도 대학에 떨어지고 나면 그동안의 노력이 하루아침에 허사가 됐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인생자체가 끝났다고 자살도 서슴지 않는 학생을 우린 봐왔다. 이런 현실속에 기여입학제가 실시된다면 돈없고 힘없는 일반 부모와 학생들이 갖는 상대적 박탈감과 분노는 어떻게 치유될 수 있단 말인가.
‘소뿔 바로잡다 소 잡는다’는 말이 있다. 몇몇 대학의 발전을 위한 대가로 우리 사회가 치러야할 고통이 너무나도 클게 뻔하다. 대학 재정확충 문제는 정부와 대학 그리고 기업들이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과제다. 돈이면 못할게 없다는 황금만능주의 우리 사회에서 그나마 어렵사리 지켜왔던 마지막 보루 ‘공정 입시제도’가 무너지는 우(憂)를 결코 범해선 안된다. 이는 분명 학벌을 타파하고 능력위주의 사회건설인 21세기 세계화시대의 대세를 거스르는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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