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밥을 지으려고 쌀을 씻던 중 튀어 나와 수세미 통 속으로 들어 간 콩이 절치부심한 끝에 환생한 것 같았다. 그 아름다운 콩 줄기를 투명한 유리잔에 맑은 물과 함께 담아 식탁에 올려놓았다.
일전에 아들아이가 학교에서 강낭콩 관찰일지를 써야 된다고 한 적이 있었다. 강낭콩 세 알을 접시에 담아 식탁위에 놓고 매일 물을 주며 정성껏 지켜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이 콩들은 싹 틔울 생각을 안 하는 것이었다. 관찰일지를 제출 할 날은 다가오는데 아이와 나의 애타는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문학을 하는 방법은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요즘은 각 학교마다 문예창작과가 있어서 작가를 상품처럼 만들어 내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물론 전문적으로 작법에 관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더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학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삶의 깊이를 들여다 볼 줄 아는 심안은, 화려한 기교나 수사를 배우는 것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
수세미 통 속의 콩처럼 아무도 보지 않는 음지에서 홀로 고민하고 습작한, 긴 시간의 고통 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리라.
우리는 세인의 박수와 찬사를 얻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속 깊은 곳에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 폭발할 것 같은 어떤 에너지, 쓰지 않고 견딜 수 없는 힘을 백지에 쏟아 부어야 하는 것이다.
가장 극한의 음지에서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았을 때 그 곳에 콩은 없고 콩 줄기만 자라듯 나는 없고 작품만 살아남는 것이다. 누가 그랬던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 지금도 백지의 공포와 마주 한 채 음지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문우 여러분께 우리 집 식탁에서 자라는 아름다운 콩 줄기를 보여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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