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학교는 교사들도 아이들도 슬프기 보다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어안이 벙벙했다. 나는 이 사건을 어떻게 아이들과 이야기해야 하는 가를 고민했다. 재헌이는 친구를 보내고 버스 앞으로 길을 건너려다 추월하는 봉고에 사고를 당한 터라 교통질서에 대한 이야기를 짚고 넘어가야 했다. 또한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우리가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해야만 했다. 그래서 이야기를 시작했고 진지한 이야기가 오고 간 후 아이들에게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을 써 보도록 했다. 재헌이는 어리지만 착하고 똑똑해서 우리반 아이들에게도 좋은 인상으로 남아있었다. 그래서 교통사고의 무서움과 재헌이가 천국에 갔으며 그 곳에서 행복하게 지내기를 바란다는 편지를 쓴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항상 일기도 안 써오고 써도 두 줄 세 줄을 넘지 못하는 수환이가 또 한 시간이 넘도록 빈 종이를 앞에 두고 고개만 수그리고 있었다. 며칠 전 이유 없이 결석을 했고 집안에 있으면서도 없는 체 가장하고 나를 애먹였던 아이라 가슴이 답답해졌다. 재혼한 가정에서 가정불화와 새 아버지와의 마찰로 방황하는 것이려니 애써 용서하고 있었건만 다른 것은 다 참겠는데 이렇게 중요한 일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더 답답해졌다.
“왜 안 쓰고 있는 거야?”하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수환이는 참고 있던 울음을 터뜨렸다. 그 울음소리는 내 호통이 무서워서도 서운해서도 아니었다. “우리 아빠도… 교통사고로… 엉엉….”
나와 우리반 아이들은 수환이가 세살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빠가 생각나서 울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제서야 재헌이의 죽음도 수환이의 슬픔도 가슴에 다가와 눈시울이 붉어졌다.
슬픔은 겪은 사람만이 슬픔을 아는 것이다. 수환이는 행동도 느리고 말도 느리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은 누구보다도 먼저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이 아이를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배워나가야 할 많은 것들이 있기 때문에 만났다는 것을 그 순간 다시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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