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정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히히덕거리며 웃통을 벗고 등짝에 책보를 매고 그리고 옷을 덧입었다. 옷이 젖는 것은 괜찮지만 책이 젖어서는 안된다. 구부정하게 빗속을 달리는 모습은 영락없는 곱추였다. 가로수들이 킥킥대며 얼마나 멀리까지 웃어댔을 것인가.
쌔리다가, 뿌리다가, 내리다가 지쳤는지 비는 집에까지 와서야 그쳤다.
책보를 풀었다. 빗물들이 가만히 있을 리 있겠는가. 퉁퉁 부풀어 오른 국어책, 셈본책, 사회 생활책, 자연책을 차례로 눌러 짠 후 마루에 널었다. 필통을 열었다. 빗속을 달려왔으니 연필심이 온전할 리 있겠는가. 칼은 들지 않고 연필심은 멍이 들고 숙제는 해야 하고. 몽당연필만이 살아남았을 뿐이다. 침을 묻혀가며 꾹꾹 눌러 숙제를 했다. 숙제라야 국어책 몇 쪽 몇 번 쓰는 그런 단순한 작업들이었다.
비가 내렸다.
내 초등학교 교정을 적시던 그 때 그 봄비가 이제와 왜 그렇게도 서럽게만 느껴지는 것일까? 비만 오면 우산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교정의 우리 반 친구 어머니들. 언제나 내 어머니는 거기에 끼어있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 그것이 서럽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못된 불효 때문일까. 못된 그리움 때문일까.
젖이 모자라 동냥젖을 얻어 먹였고, 그래서 젖배 곯아 쉽게 배 고프다고 일생동안 같은 말만 되풀이 하시던 내 어머니. 그렇게도 끔찍이 사랑했던 내 어머니는 어렸을 적 나를 한 번도 안아 준 적이 없었다. 그것이 지금도 더욱 서러운 것이다.
“여보, 내가 그 옛날 살았던 마루, 아랫목, 사랑방을 삽시다.”
“조금 있다가요. 돈이 생기면요.”
요즈음 내 아내와 이런 대화들이 오고 간다. 경제적 가치도 없는 내 고향집을 사서 뭐에 쓴다는 말인가.
비만 오면 자가용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오늘날 초등학교 교정 앞. 내 초등학교 시절은 검정 우산, 찢어진 우산, 광목 우산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제는 연필, 양철 필통, 책 대신 샤프, 헝겊 필통, 컴퓨터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이들은 연필이나 깎을 수 있을까? 궁체로 우리 글씨를 또박또박 쓸 수 있을까?
“여보, 배고파요.”
아내는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내게 금세 밥상을 차려주었다. 언제부터인가 내 아내는 내 어머니의 서러운 공간을 채워주고 있었다. 화려하게 울다만 것들과 피다만 것들이 어찌 내 어머니만의 세월일 것인가. 세월은 허무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도 아름다운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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