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춘추]초등학교 교정에 내리던 봄비

  • 오피니언
  • 독자 칼럼

[중도춘추]초등학교 교정에 내리던 봄비

  • 승인 2005-06-24 01:31
  • 신웅순   중부대 교수. 문학평론가신웅순 중부대 교수. 문학평론가
봄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오늘도 어머니는 마중 나오지 않았다. 복도 현관에는 나와 몇몇 아이들만이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으레 정해져 있는 아이들이었다. 아이들과 엄마들이 지나간, 상급생들이 질러간 텅 빈 운동장. 비가 내리는 텅 빈 운동장은 어린 나에게 얼마나 허전하고 쓸쓸했던가.

무한정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히히덕거리며 웃통을 벗고 등짝에 책보를 매고 그리고 옷을 덧입었다. 옷이 젖는 것은 괜찮지만 책이 젖어서는 안된다. 구부정하게 빗속을 달리는 모습은 영락없는 곱추였다. 가로수들이 킥킥대며 얼마나 멀리까지 웃어댔을 것인가.

쌔리다가, 뿌리다가, 내리다가 지쳤는지 비는 집에까지 와서야 그쳤다.
책보를 풀었다. 빗물들이 가만히 있을 리 있겠는가. 퉁퉁 부풀어 오른 국어책, 셈본책, 사회 생활책, 자연책을 차례로 눌러 짠 후 마루에 널었다. 필통을 열었다. 빗속을 달려왔으니 연필심이 온전할 리 있겠는가. 칼은 들지 않고 연필심은 멍이 들고 숙제는 해야 하고. 몽당연필만이 살아남았을 뿐이다. 침을 묻혀가며 꾹꾹 눌러 숙제를 했다. 숙제라야 국어책 몇 쪽 몇 번 쓰는 그런 단순한 작업들이었다.
비가 내렸다.

내 초등학교 교정을 적시던 그 때 그 봄비가 이제와 왜 그렇게도 서럽게만 느껴지는 것일까? 비만 오면 우산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교정의 우리 반 친구 어머니들. 언제나 내 어머니는 거기에 끼어있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 그것이 서럽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못된 불효 때문일까. 못된 그리움 때문일까.

젖이 모자라 동냥젖을 얻어 먹였고, 그래서 젖배 곯아 쉽게 배 고프다고 일생동안 같은 말만 되풀이 하시던 내 어머니. 그렇게도 끔찍이 사랑했던 내 어머니는 어렸을 적 나를 한 번도 안아 준 적이 없었다. 그것이 지금도 더욱 서러운 것이다.

“여보, 내가 그 옛날 살았던 마루, 아랫목, 사랑방을 삽시다.”
“조금 있다가요. 돈이 생기면요.”

요즈음 내 아내와 이런 대화들이 오고 간다. 경제적 가치도 없는 내 고향집을 사서 뭐에 쓴다는 말인가.
비만 오면 자가용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오늘날 초등학교 교정 앞. 내 초등학교 시절은 검정 우산, 찢어진 우산, 광목 우산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제는 연필, 양철 필통, 책 대신 샤프, 헝겊 필통, 컴퓨터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이들은 연필이나 깎을 수 있을까? 궁체로 우리 글씨를 또박또박 쓸 수 있을까?
“여보, 배고파요.”

아내는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내게 금세 밥상을 차려주었다. 언제부터인가 내 아내는 내 어머니의 서러운 공간을 채워주고 있었다. 화려하게 울다만 것들과 피다만 것들이 어찌 내 어머니만의 세월일 것인가. 세월은 허무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도 아름다운 것임을.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가을단풍 새 명소된 대전 장태산휴양림…인근 정신요양시설 응급실 '불안불안'
  2. [사설] 의료계 '정원 조정 방안', 검토할 만하다
  3. [사설] 충남공무원노조가 긍정 평가한 충남도의회
  4. 대전사랑메세나에서 카페소소한과 함께 발달장애인들에게 휘낭시에 선물
  5. 제90차 지역정책포럼 및 학술컨퍼런스 개최
  1. 국방과학일류도시 대전 위한 교류장 열려
  2. '한국탁구 국가대표 2024' 나만의 우표로 만나다
  3. 충남대병원 응급의학과 학술적 업적 수상 잇달아…이번엔 국제학자상
  4. 건양대병원, 시술과 수술을 한 곳에서 '새 수술센터 개소'
  5. 시민의 안전 책임질 ‘제설 준비 끝’

헤드라인 뉴스


내년 동·서부 학교지원센터 학교 지원 항목 추가… 교원 생존수영 업무에서 손 뗀다

내년 동·서부 학교지원센터 학교 지원 항목 추가… 교원 생존수영 업무에서 손 뗀다

교원들의 골머리를 썩이던 생존 수영 관련 업무가 내년부터 대전 동·서부 학교지원센터로 완전 이관된다. 추가로 교과서 배부, 교내 특별실 재배치 등의 업무도 이관돼 교원들이 학기초에 겪는 업무 부담은 일부 해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26일 대전교육청에 따르면 2025년부터 동·서부교육청 학교지원센터(이하 센터)가 기존 지원항목 중 5개 항목의 지원범위를 확대하고 학교에서 맡던 업무 4개를 추가로 지원한다. 먼저 센터 지원항목 중 교원들의 만족도가 가장 높은 생존 수영 관련 업무는 내년부터 교사들의 손을 완전히 떠나게 된다. 현재 센터에..

[기획] 대전, 트램부터 신교통수단까지… 도시균형발전 초석
[기획] 대전, 트램부터 신교통수단까지… 도시균형발전 초석

대전시가 충청권 메가시티 완성의 시작점인 광역교통망 구축에 힘을 쏟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도시철도 2호선 트램부터 신교통수단 시범사업 등을 추진하면서 도시균형발전 초석을 다지는 것을 넘어 충청 광역 교통망의 거점 도시가 되기 위한 준비에 나섰다. 28년 만에 도시철도 2호선 트램이 올해 연말 착공한다. 도시철도 2호선은 과거 1995년 계획을 시작으로 96년 건설교통부 기본계획 승인을 받으면서 추진 됐다. 이후 2012년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면서 사업이 물꼬를 틀 것으로 기대됐지만 자기부상열차에서 트램으로 계획이 변경되면..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대전 유통업계가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크리스마스트리와 대대적인 마케팅으로 겨울철 대목을 노리고 있다. 우선 대전신세계 Art&Science는 본격적인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26일 백화점 1층 중앙보이드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선보였다. 크리스마스 연출은 '조이 에브리웨어(Joy Everywhere)'를 테마로 조성했으며, 크리스마스트리 외에도 건물 외관 역시 크리스마스 조명과 미디어 파사드를 준비해 백화점을 찾은 고객이 크리스마스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 대전 신세계는 12월 24일까지 매일 선물이 쏟아지는 '어드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 시민의 안전 책임질 ‘제설 준비 끝’ 시민의 안전 책임질 ‘제설 준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