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정규 편집부국장 |
이제 본론으로 돌아가 의미를 되새겨 보자. 똑같은 피사체를 놓고 반잔씩과 반잔밖에의 답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야말로 착시일까 아니면 진실의 왜곡일까. 그도 아니면 낙천주와 비관주의 사이에서 빚어진 느낌의 차이일까. 거창하게 여기까지 가다보면 별것도 아닌 우문의 심각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야말로 우문이 빚어 놓을 파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같은 우문이 지배하는 현실사회의 악영향이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는 혼돈이 난무하는 언어의 유희속에서 살고 있지는 않은지 의심스럽다. 이미 화두가 돼 버린 중앙과 지방, 집중과 균형, 수도권과 비 수도권등이 바로 그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현실이라는 상황논리속에서 글의 쓰임새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글들은 경계가 명쾌한 고유 영역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경계가 모호한채 갈등과 대립의 한축으로 존재할 때 빛을 발할 뿐이다. 실제로 대한민국의 정치사에 영원한 야당과 여당이 있었는가. 중앙과 지방, 보수와 진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시공을 벗어나 볼때 우문일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선 어떤가. 여전히 이 단어의 순열조합에는 대립, 각축, 갈등 등 어두운 그림자만 있을 뿐이다. 때로는 각자 세력으로 확대 해석돼 판과 판의 싸움으로 까지 치닫는다. 연이어 지는 색깔시비,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다툼, 중앙집중과 지방분권의 갈등, 빈부의 충돌, 여기에 여야간의 수 논리를 앞세운 당리 당략적 폐해 등이 바로 그것이다. 마치 오고가는 용어만 놓고 볼땐 총성없는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어찌보면 이는 한국사와 함께 해 온 물 반잔의 요소들이다. 그런데 이 요소들은 자가발전에 능숙하다. 그때 그때마다 극과 극으로 갈려 갈등이나 충돌로 진화됐다. 편견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물 반잔의 교훈을 너무 간과한 탓은 아닐까. 똑같은 사안도 내가 하면 선이고 남이하면 악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하면 로맨스이고 남이하면 불륜으로 보는 착시현상과도 일맥상통한다. 실례로 한 정권이 국정의 핵심과제로 지방분권, 국가균형발전, 신행정수도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워 국민으로부터 선택받았다면 그 추진은 담보돼야 한다. 다른 정권의 선택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국토공간구조를 효율적으로 재편하고 국가 경영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자는 국민의 선택은 간곳이 없다. 행정도시 건설을 통해 수도권과 지방, 지역간 상생을 이루자는 목표는 정권 탄생 3년이 지났음에도 오리무중이다.
우리사회에 뿌리깊게 고착돼 있는 ‘서울 중심주의’의 서열의식과 지역간에 심각한 힘의 불균형이 부른 소산이다.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에 대한 헌법소원같은 일탈행위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이를 극복해 내지 못한다면 선진국으로 가는 한국의 미래는 없다. 그런차원에서 국론분열을 부추기고 있는 헌법소원과 같은 반역사적인 걸림돌은 제고돼야 한다. 이것이 화합이고 상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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