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초대석]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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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초대석]결심

  • 승인 2005-06-20 00:00
  • 김영수 한남대 종합서비스센터 소장김영수 한남대 종합서비스센터 소장
평소에 술을 좋아하다 보니 친구들도 거의 술친구들이라 할 수 있는데, 요사이 만남에서 내가 술을 끊었다 선언했더니 비아냥과 질투 섞인 야유가 흡사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져 나온다. 대충 정리해보면 “너만 오래 잘 살아라” “그러면 무슨 재미로 세상사나” 는 등이다. 물론 악의는 없지만 왕따 당하기 그야말로 일촉즉발에 다다라서, 자리는 뜨지 않고 어울리자니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담배, 술을 안 하면 세상사는 재미가 없다는 말을 흔히들 한다. 정말 그럴까? 그러면 지금까지 종교적 이유에서 거나 또 다른 환경으로 인해 전혀 술, 담배에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들은 정말 세상살 재미도 없이 살아 왔단 말인가? 그렇지는 않다. 그럼에도 애연가나 애주가들은 흡사 한쪽 날개를 잃어버린 듯 안타까워한다.

시인 조지훈은 주도를 18단계 나누고 17단계인 8단 관주(觀酒)로서 술을 보고 즐거워하되 이미 술을 마실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사람이라고 했다(참고로 마지막 18단계는 9단으로 폐주(廢酒) 혹은 열반주로 술로 인해 다른 세상을 떠난 사람). 혹자는 아무렇게나 생각해도 좋지만 나는 관주 상태로서 즐겼으면 한다.

어쨌든 금주 선언을 우렁차게 하고 나니 많은 사람들의 요주의 인물이 되고 말았다. 친지들이 우려하는 것은 며칠이나 갈 것이라고 저렇게 큰 소리 치느냐는 것이다. 심지어 정마저 거부하기냐는 등 건배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 예의에 어긋나지 않느냐는 등 갖은 유혹이 가슴 설레게 하지만 작심삼일이라는 말을 무색케 해야겠다는 오기도 발동한 것이다. 일찍이 이규보는 ‘지지헌기(止止軒記)’에서 “지지란 그칠 데 그치고 멈출 데 멈추는 것이다”라고 했으니 사람의 일은 “모두 그침을 알지 못하는데서 생긴다” 했다. 뭐, 그렇게 크게까지 말할게 뭐 있냐고 할지 모르지만 나 같은 소인배는 결심하기도 어렵고, 또 그것을 실천하기란 더 어려운 것이다.

국제로타리클럽의 4가지 표준에 보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데 있어서”라는 첫 시작의 구절이 있다. 쉽지 않은 것들을 우리는 아무런 생각 없이 암기하고 복창한다. 다 잘나고, 다 똑똑한 사람들의 세상이다. 어디서나 나서기 좋아하고, 쉴새없이 자기말만 말하기 좋아하고, 자기 없으면 안 된다는 아마추어가 겁 없이 판치는 세상이다. 침묵은 금이 아니라 무용지물이고 웅변은 권력이 되어 버렸다. 처음 말할 때는 듣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말하면 왜, 진작 얘기하지 않았느냐고 따지는 세상이다.

소리 없이 나처럼 떠들지 않고 금주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 이것저것 수식어 없이도 한번 결심하면 꿋꿋이 지키는 사람들이 많기에 우리 사회가 지탱되어 나간다. 국어사전에 결심이란 마음을 굳게 정함, 단단히 마음을 먹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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