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연에는 다 법칙이 있다. 길가에 놓인 돌멩이 하나라도 다 거기 놓인 이유가 있고, 들꽃 한 송이도 다 피어나는 이유가 있고 바다 속 플랑크톤 하나라도 다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 그 존재이유를 벗어날 때,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 우리는 그것들의 그 이름을 박탈 할 수밖에 없다.
‘고( )’는 모난 술잔을 말하는 것으로 일설에는 둘레가 8각형으로 된 술잔이라고도 한다. 모난 술잔이 모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으니, 의식에 쓰이기 위해서는 술잔이나 그릇들이 제 각각 정형화된 모양을 갖추었을 것이다.
흔히 우리가 제사에 쓰는 술잔과 일상에서 사용하는 술잔의 모습이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름도 ‘고’라고 고유명사로 지은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그 모난 술잔이 둥그래진다면 그 술잔은 더 이상 모난 술잔이 아닌 것이다.
아니 제사상위에 놓여질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또 하나, 모가 난 술잔이 없다고 해서 둥그런 술잔을 울린다고 하면, 그러면서 술잔을 고라고 하는 것도 그 존재가치를 상실하는 것이다.
쓰고자 하는 것이 없으면 찾거나 만들면 되는 것이다. 불성실 한 것, 게으른 것, 두루뭉실한 것이야말로 예를 망가뜨리는 것이요, 스스로의 본분을 망각하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나름대로의 존재이유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술에 술탄 듯, 물에 물탄 듯,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살면 안 될 일이다.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는 간 뺀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정권이 바뀌어도 늘 자리를 유지하는 인간들은 모난 술잔, 둥그런 술잔만도 못한 것이다. ‘군군 신신 부부 자자(君君 臣臣 父父 子子)’와 통한다. 임금은 임금으로서의 도리를 다하고 신하는 신하로서의 도리를 다하고 아비는 아비로서의 도리를 다하고 자식은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해야 함을 뜻하니, 명분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말이다.
명분이 바로서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서 공자는 “군자는 알지 못하는 일은 말하지 않고 의심나는 것은 빼는 법이다. 명분이 바로 서지 않으면 말이 통하지 않고 말이 통하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악이 일어나지 않고 예악이 일어지 않으면 형벌이 들어맞지 않고, 형벌이 들어맞지 않으면 백성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게 된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 말을 하는데 있어 구차한 것이 없어야 한다고”하였단다.
여기서 예악(禮樂)이란 예절과 음악이다. 예절은 언행을 삼가게 하고 음악은 인심을 감화시키는 것이라 하여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사회의 질서유지를 위하여 매우 중요시하였으며, 특히 예악을 숭상하는 나라 중 으뜸은 동방예의지국은 바로 우리나라를 칭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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