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마을에 여우와 두루미가 살았답니다. 어느 날 여우는 두루미를 저녁식사에 초대했습니다. “자, 두루미님! 맛은 별로 없지만 많이 드세요” 하며 접시에 음식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두루미는 접시가 너무 납작해서 음식을 입 속에 넣을 수가 없었습니다. 두루미는 약이 올랐지만 점잖게 말했습니다. “여우님, 초대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다음에 저희 집에 초대하겠습니다.” 며칠 뒤 여우는 두루미의 초대를 받아 두루미 집에 갔습니다.
음식을 담아왔습니다. 두루미는 주둥이가 좁고 긴 항아리에 음식을 담아 내면서 “자, 드세요. 제가 여우님을 위해서 특별히 정성껏 준비했습니다.” 여우는 음식을 먹으려 애썼지만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두루미는 긴 부리를 항아리 속에 넣고 음식을 아주 맛있게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능청스럽게 말했습니다. “많이 드세요. 음식은 얼마든지 있답니다.”
그러나 여우는 군침만 흘리고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산골 사돈과 바닷가 사돈>
어느 산골에 사는 부부가 딸을 바닷가로 시집을 보냈습니다. 그 딸은 자식을 낳고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딸은 시부모에게 늘 산 속의 생활을 이야기하면서 산삼보다도 더 맛있다는 산나물 이야기며 버섯 등 자기 집에는 맛있는 것이 많다고 자랑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시부모는 산 속에 사는 사돈댁의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고 먼 길을 나섰습니다. 딸의 시부모가 온다는 소식을 들은 부부는 대접할 일을 가지고 걱정을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늘 우리가 먹는 대로 차리면 되지 않느냐고 했지만 딸을 시집 보낸 어머니는 어떻게 말린 산나물이며 그 지긋지긋한 버섯을 사돈댁에게까지 먹게 할 수 있느냐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장날 먼 길을 걸어 장을 보아 간고등어며, 간갈치를 장만하여 사돈을 맞이하였습니다. 밥상을 받은 사돈은 그토록 기대했던 산나물이며 버섯은 없고 바닷가에서는 먹지도 않고 버리는 고등어며 짜디짠 갈치를 먹으면서 잘 못 왔다고 하며 다음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시는 먹을 것이 없는 산 속 며느리 집으로 발걸음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기억하시죠? 몇 년 전 마산공항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람이 많이 죽고 다쳤습니다. 그때 동네 사람들이 달려와 비행기에서 튕겨져 나온 승객들을 구조했는데 생각없이 잡아당기고 업고 하는 바람에 오히려 평생 허리를 못 쓸 정도로 더 크게 다친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군인이 술집아가씨를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가다가 사고 나서 논바닥에 굴러 떨어졌습니다. 그 근처 논에서 일하던 한 농부가 아가씨의 상의 단추가 뒤에 있는 것을 보고 사고로 머리가 돌아간 줄 알고 머리를 비틀어 죽인 사실을 아세요? 그냥 놔뒀으면 살았을 것을!
이 이야기들은 최선의 배려가 최악이 된 경우들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는 나의 최선이 상대방에겐 최악이 될 수 있습니다. 이웃 사랑을 실천할 때에는 상대방의 사정을 생각합시다. 이웃 사랑도 이렇게 현명해야 하지 않을까요?
‘사람의 눈에는 바르게 보이는 길도 끝장에는 죽음에 이르는 수가 있다.’(잠언 14, 12)
혹시 나의 가족과 형제 친지들에게 보인 나의 최선이 그들에게 오히려 해가 되진 않았는지 반성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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