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 아키히토 일본국왕은 “간무(桓武) 천황(737~806)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후손이라고 속일본기에 적혀 있어 한국과의 인연을 느낀다”고 발표해 관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 후 일본 국왕의 친척이 공주의 무령왕릉을 다녀간 사실도 있다 한다.
일본을 여행하면서 흥미로운 점은 일본인들이 백제를 ‘구다라’로 읽는 점과 고대 일본의 수도 이름이 나라(奈良)인 점이다. 백제는 구다라로 읽힐 수 없는 음운이며, 더구나 ‘구다라나이(くだらない·백제가 없다)’라고 쓰고서 ‘시시하다’는 뜻으로 쓰는 것은 더욱 흥미로운 일이다. ‘구다라’에 대한 의문은 백마강 나루터에 있는 마을의 지명이 ‘구드래’라는 점으로부터 쉽게 풀린다. 아마도 일본으로 이주한 백제인들이 모국을 떠났던 항구이름 구드래를 자주 이야기했을 것이며, 이로부터 백제가 일본인들에게 ‘구다라’로 읽혔을 가능성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또한 당시 일본으로 이주한 패망한 백제의 지배계급들이 지녔던 우수한 문화를 보고서 현지인들이 백제것이 아니면 시시하게 느꼈을 법도 한 것이다.
지난주에 한국과학재단과 일본과학진흥회가 공동 주관하는 한일기초과학교류위원회의 일원으로 일본 교토를 다녀왔다. 교토만 해도 세 번째의 방문이었기에 교토의 역사유적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고대 한일 관계에 대한 평상시 듣지 못했던 부분을 알게 되었다.
일본의 수도 이전 역사를 보면 아스카(飛鳥)-나라(奈良)-교토(京都)-동경(東京)으로 이어지는데 이들 중 적어도 교토 천도까지 백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나타난다. 백제인들이 이주해 나라를 일으킨 도시가 나라로 알려졌는데, 그 이전의 일본문화의 중심지인 아스카(飛鳥)도 그 어원이 편안하고 살기 좋은 곳이란 의미를 갖는 한국의 고대어로부터 유래되었다고 중년의 일본 아줌마 가이드로부터 설명을 들었다.
나라라는 이름은 그야말로 나라를 잃어버린 백제인들이 그들의 모국을 잊지 않기 위해 붙인 이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794년 교토 천도시에는 좌청룡 우백호 북현무 남주작의 풍수사상에 맞는 곳을 골라 천도하였는데 그곳은 이미 한국에서 이주하여 부를 이루며 살던 가모(鴨)씨 일가의 터전이었다고 한다. 고대 한국에는 새와 같은 동물의 이름을 성씨로 짓는 풍습이 있었다고 하며 오리를 의미하는 가모(鴨)씨 일가를 기리는 신사가 바로 교토의 시모가모 신사(下鴨神社)로서 일본 3대 신사 중의 한곳인 것이다.
이렇게 일본 문화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나라와 교토 지역에 백제의 얼이 오늘날까지도 살아있음을 새롭게 느꼈으며 한국의 일본 방문객들에게 그들의 조상이 백제에서 온 사람들임을 스스럼 없이 이야기하는 일본인을 만날 때 일본을 휩쓸고 있는 한류문화와 욘사마 문화가 우연만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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