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도 지금의 방과후 특기적성교육과 비슷한 활동이 있었다. 학교 수업이 끝난 후 주로 예체능을 선생님께 배우는 것인데, 나는 친구 2명과 함께 붓글씨를 배웠다. 학교 대표로 군 대회에 나가 입상도 여러 차례했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께서 붓글씨를 배우고 있는 교실로 찾아오셨다. 선생님이 오셨기에 글씨를 더욱 예쁘게 잘 쓰려고 애썼지만 손이 떨려서 제대로 써지지가 않았다. 한참을 지켜보시던 선생님은 솜씨가 많이 늘었다고 칭찬하시고는 500원 짜리 지폐 한 장을 나에게 건네주시며 작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기원아, 붓이 너무 낡았구나! 이 돈으로 붓을 하나 사렴.”
사실 좋은 붓으로 글씨를 쓰는 친구들이 무척이나 부러웠지만 나에겐 그런 좋은 붓을 싸서 쓸 수 있는 가정형편이 아니었다. 나의 사정을 잘 아시고 돈을 건네주셨기에 선생님이 더욱 고마웠고,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선생님께서는 여전히 고향의 초등학교에서 건강하게 교단을 지키고 계시다.
이번에는 제자와 관련된 이야기.
전에 근무하던 학교에서 3학년 담임을 하고 있을 때, 운동을 하다가 발을 잘못 디뎌 그만 발목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팔 다리가 부러져 본 사람은 알겠지만 깁스를 해 놓으면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야 그리 어려울 것이 없지만 목발을 짚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 좌변기가 없는 화장실을 사용하는 일 등은 생각 이상으로 힘이 들었다. 특히 3층에서 계단을 내려가 급식실에서 점심 먹을 생각을 하니 까마득했다. 우리 반 아이들의 급식 지도는 옆 반 선생님께 부탁을 해 놓고, 목발을 짚은 채 식판을 어떻게 들 것인지 고민하고 있는데 한 녀석이 내 앞으로 걸어나왔다.
“선생님! 다리 때문에 불편하시죠? 식당까지 내려가려면 힘드실 테니까 제가 선생님 점심을 교실로 갖다드릴게요. 걱정 마시고 교실에 계세요.”
반갑고 고마운 한 편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부모님이나 다른 선생님의 귀뜸도 없이 초등학교 3학년 어린 녀석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는지 정말 놀랍고도 대견했다. 그 후 한동안 아이가 가져다주는 점심을 흐뭇하게 먹을 수 있었다.
교직 경력 15년, 스승의 날에 옛 선생님께 달랑 카드 한 장으로 인사를 대신해도 손수 전화하셔서 내 건강을 물어주시는 선생님이 계시고, 말하기 전에 먼저 선생님 마음을 헤아려 도와주려고 애쓰는 사랑스런 제자가 있기에 난 오늘도 교사라는 내 자리가 즐겁고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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