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일상을 뒤로한 채 졸업여행 길에 올랐다. 늘 제주도로 가던 졸업여행을 조금 새롭게 바꿔보기 위해 동해안으로 여행지를 바꾼 첫 해 이기도 했다. 졸업여행을 갈 때마다 빠지는 학생들이 많고 호응도 좋지 않아 모두들 시큰둥해 하는 분위기를 무리하게 추슬러 전원이 참석할 것을 요구했고, 우여곡절 끝에 졸업여행 100%의 참석이라는 신화를 창조하기도 하며 오른 여행길이었다. 모두들 잊지 못할 추억 만들기를 꿈꾸며 말이다.
처음 도착한 곳은 동강이었다. 래프팅을 하기에는 조금 이른 시기였지만 학생들의 젊은 혈기가 충분히 날씨를 압도하고 있어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래프팅을 하며 서로 힘을 합해 노를 저으며 우정을 다졌고, 모두 물에 빠지면서도 너무 좋아하는 그들에게 넋이나가 결국 나 자신도 물에 빠지는 해프닝이 연출되기도 했다.
래프팅이 끝난 뒤 모두들 파랗게 질린 얼굴로 여전히 즐거워하며 맛있는 저녁을 함께 했다. 따뜻한 음식의 소중함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 저녁식사를 했다. 다음날 서바이벌 게임을 두 편으로 나눠하며 동심으로 돌아가 한껏 기량을 발휘하였고, 미공개 동굴 탐사 길에 올랐다. 나 역시 컴컴한 동굴 속을 탐사한다는 것이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임에 틀림없을 것이라는 신념으로 동굴 탐사를 시작 하였다. 동굴 탐사에 앞서, 우주복으로 갈아입고 머리에는 손전등을 달았다. 평소 접해보지 않았던 경험인지라 다소 설레기도 하였다.
가이드가 “교수님이 선두에 서서 가셔야 낙오하는 학생들이 나오지 않는다”며 선두에 설 것을 권유하였다. 선두에 서서 동굴 탐사를 시작하였다. 동굴 탐사는 막연하게 생각한 것 보다 훨씬 위험하고 스릴이 있었다. 온 몸을 부르르 떨어가며 기고, 미끄러지고를 반복하며 어둠을 헤쳐 나간 기억이 새롭다.
내 기억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 그렇게 무서운 경험을 한 적이 없던 것 같다. 동굴 중앙으로 들어가니 넓은 광장이 있었다. 땅 속에 이러한 광장이 펼쳐지리라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으리라. 이것을 누릴 수 있는 것은 고생한 자들만의 특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광장에 앉아 잠시 상념에 젖어있을 무렵 학생들이 하나 둘 다가오기 시작했다. 얼굴과 몸은 흙과 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승리의 쾌감을 읽을 수 있었다. 아마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으리라.
그때 나는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얘들아! 힘들었지만 여기에 와보니 가슴이 뿌듯하지? 우리가 미공개 동굴 탐사를 했다는 기억을 평생 간직할 수 있어 좋고,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어 가는 것 같구나. 우리 모두 오로지 한가지의 목적을 향해 동굴 속으로 들어온 순수함을 고이 간직 하자꾸나.”
여행을 다녀와서 만나는 교수님들마다 졸업여행지를 동해안으로 갈 것을 적극 추천하곤 하였다. 졸업여행 때 나이트에 가 젊음을 불사르는 것도 좋지만, 자연과 함께 한 동강에서의 래프팅과 서바이벌 게임, 그리고 미공개 동굴 탐사의 기억은 평생토록 간직할 수 있는 추억 만들기에 충분했고, 더 중요한 것은 모처럼 서로가 하나 되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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