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텍사스 레인저스의 투수 박찬호가 4일 캔자스 시티와의 경기에서 개인통산 100승의 대기록을 세운후 열띤 응원을 보내준 팬들과 감사의 악수를 나누고 있다. |
1876년 내셔널리그가 시작된 이래 메이저리그는 129년째를 맞고 있으며, 메이저리그에서 단 1개의 공이라도 던진 투수는 7716명이다.
이중 세계최고라는 메이저리그에서 100승 이상을 거둔 투수는 박찬호를 비롯해 542명으로 7%에 불과하며, 동양인으로는 두번째, 한국에서는 첫 번째 기록이다.
현역선수 중 100승 이상을 올린 선수 역시 40명 뿐이다. 메이저리그에서 한해 650명 안팍의 투수가 활동함을 감안하면 역시 6%에 불과하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100승’은 미국 출신 선수들의 전유물이다.
현역선수 40명 중 미국이 아닌 곳에서 태어나 100승을 달성한 선수는 페드로 마르티네스(188승·뉴욕 메츠), 바톨로 콜론(124승·LA에인절스), 노모 히데오(121승 탬파베이), 페드로 아스타시오(120승·텍사스), 리반 에르난데스(103승·워싱턴),윌슨 알바레스(102승· LA다저스), 이스마일 발데스(102승·폴로리다), 에스테반 로아이사(101승·워싱턴) 박찬호 등 단 9명뿐이다.
이중에서도 미국과 근접해 어린 시절부터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의 집중표적이 되는 라틴 아메리카 선수가 7명. 동양에서 온 선수는 노모와 박찬호 2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박찬호에 이은 동양인 선수의 메이저리그 100승, 한국 선수의 100승은 앞으로도 오래 기다려야 할 전망이다.
현재 메이저리그에 활동중인 동양인 투수 중 노모와 박찬호를 제외한 선수들의 최다승은 만37세 생일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하세가와 시게토시(시애틀)의 44승이다. 37승의 이시이 가즈히사(31·뉴욕 메츠) 오카 도모카즈(28·워싱턴) 31승의 김병현(26·콜로라도) 16승의 서재응(28·뉴욕 메츠) 등은 100승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이 아직 까마득하다.
박찬호는 지난 96년 4월7일 시카고 컵스전에 구원 등판해 4이닝 동안 안타3개만을 내주고 탈삼진 7개를 솎아내며 무실점으로 데뷔 첫 승을 올렸다. 이후 98년 4월8일 애틀랜타전에서 20승을 올린뒤, 98년 8월22일 플로리다전에서 30승, 99년 7월18일 애니하임전에서 40승, 2000년 4월23일 신시내티전에서 50, 2001년 10월1일 80승을 기록한 박찬호는 텍사스 유니폼으로 갈아입으며 슬럼프가 찾아왔다. 이후 박찬호는 2003년 허리부상으로 고전했으며, 2004년 4승7패로 한물간 선수로 악평에 시달렸지만 올해들어 6승1패를 거둬, 노모 히데오에 이어 동양인 투수로는 사상 두 번째 개인 통산 100승을 챙겼으며 이는 메이저리그 진출 12년만에 2만5208개의 공을 던지며 이룬 대기록이라 할 수 있다.
3년간의 부상·부진 탓에 기록행진은 더뎌졌지만 박찬호 자신이 노모를 넘어 150승 고지를 밟는 것은 물론이고 길게는 ‘통산 200승’ 달성도 한번 도전해 볼 만하다.
[박찬호는 누구?]충남 공주 토박이 10살때 첫 글러브
고교투수‘빅3’ 부상 94년 빅리그 꿈 이뤄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진출, 통산 100승을 올리며 또 다른 전환기를 맞은 박찬호는 충남 공주 토박이.
1973년 6월 29일 전파상을 하는 박제근 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그가 처음 시작한 운동은 야구가 아닌 육상.
공주 중동초 10살(3학년)때 특별 활동 부서를 육상부로 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리 넉넉하지 않은 가정형편에서도 공부를 잘했던 박찬호는 그 당시 부모의 극력반대에도 불구하고 육상을 시작했고 이후 야구부 지도교사의 눈에 띄어 야구부로 전향했다.
야구시작 2년만에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맛본 이후 야구부가 있는 공주중에 입학한 박찬호는 동네 어른들의 칭찬을 받으며 빅리그의 꿈을 키워나갔다.
91년 공주고 시절에는 한·미·일 국제청소년 야구굿월대회에 출전하는가 하면 화랑기에선 무패를 질주하던 ‘무적함대’경남상고를 잡아내는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당시 박찬호는 체인지업과 156km대에 가까운 빠른 직구를 주무기로 고교야구 최고 투수 ‘빅 3’로 부상하기도 했다.
이후 탄탄한 투구력을 인정받은 박찬호는 한양대 2학년에 재학중이던 지난 94년 2월 LA다저스에 스카우트 되어서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메이저리그로 진출한 세계적(17번째)인 선수가 됐다.
한때 부진한 피칭이 계속되면서 95년 마이너리그 생활도 했지만 피나는 노력 끝에 빅급선수로 부상하며 96년 4월7일 마침내 시카고 컵스를 상대로 메이저리그 첫승을 따내는 등 97년부터 본격적인 선발투수로 출발했다.
그리고 5년간 6500만달러의 파격적인 대우를 받고 텍사스 레인저스에 입단해서는 시즌 11번째 등판만에 6승째를 올리며 마침내 100승 고지에 올라섰다. ‘제2의 코리안특급’으로 돌아온 것이다.
[인터뷰] 팬·가족 응원이 ‘큰 힘’
-승리가 확정된 순간 어떤 느낌이었나. 또 현재의 소감은.
▲메이저리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였다. 지난 3년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옆에서 도와주신 팬들과 부모님에게 감사하다. 시즌이 끝나는 9월말까지 최선을 다하겠다.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클럽하우스 안에서 비디오를 분석하고 있었다. 비록 게임이 끝나는 순간은 목격하지 못했지만 한국에서 온 600명의 팬들의 환호에 승리가 결정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압박감이나 부담감은 없었나.
▲100승이 갖고 있는 의미를 넘버자체로만 볼 수 있겠지만 나에겐 한 경기 한 경기가 중요했다. 오늘 구장을 찾아준 한국 팬들의 열성에 부담감을 잊을 수 있었다.
-그동안 도와주신 분들은.
▲말하자면 너무 많다. 우선 한국에서 이 곳까지 와서 지켜 봐 주신 팬들과 부모님에게 감사하다. 이날 팬들의 응원에 생긴 힘과 용기는 감히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마치 야구선수를 떠나 한 인간으로서 보물이 된 기분이 들 정도였다.
-홈팬들 앞에서 100승을 거두지 못해 좀 아쉽지 않은가. 한국 팬들에게 한마디.
▲항상 멀리서 힘을 주신 팬들에게 감사 드린다. 오늘의 승리로 어려운 시기에 조금이나마 기쁨이 됐으면 한다.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을 팬들과 함께 했으면 한다. 올시즌 좋은 마무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조양수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