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의 사전적인 뜻이 인재(人材), 성품(性品), 용모(容貌) 등이라 할 때 여기서 인물의 뜻은 이들을 골고루 갖춘 사람에 해당한다. 이를 총칭하는 인재 역시 두가지 뜻으로 나뉜다. ‘학식과 능력이 뛰어난 사람(人材)’과 ‘재주가 뛰어난 사람(人才)’이다.
어쨌든 윗사람이 수하의 인물을 고르는 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음이 어휘에도 남아 있다. 한자어에는 인물난(人物難)이, 영어에는 ‘인물 가난’ (shortage of talented men)이란 말이 있다. 일본어에는 ‘인물고사’(人物考査)라는 말도 있다.
우리나라는 어느 나라보다 높은 ‘교육열’(敎育熱)로 유명하고 갖은 악조건 속에서도 근대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교육열 때문이라고 서슴없이 얘기한다. 유교적 전통이 아직 우리 저변에 남아 있어 충효(忠孝)와 예의(禮儀)를 숭상하고 인성(人性)을 중요시 한다. 그런데 왜 인물이 없는가? 인물이 없음은 당장 쓸 인물뿐이 아니다.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면서도 우리가 존경할만한 역사적 인물 하나 제대로 내세우지 못하고 있다. 만일 누가 우리에게 우리 역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묻는다면 언뜻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 외에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정치학자들이 100년 한국 근대화 역사는 현대정치사의 박물관이라고 일컬을 만큼, 우리는 왕조의 몰락, 외세의 침입, 피식민지배, 독립운동, 해방, 이데올로기대립, 민족전쟁, 독재체제, 학생혁명, 군사 쿠데타, 대통령시해(弑害), 시민혁명, 민주화투쟁 등 모든 가능한 변란을 다 겪어왔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국민이 존경할만한 인물 하나를 얻지 못했다는 것은 크나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각국 여행을 하면서 중국의 손문, 인도의 간디, 베트남의 호치민, 터키의 케말파샤 등이 언제 어디서나 국민적 존경을 받고 있으며 온국민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있는 모습을 볼라치면 스스로 부끄러운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결국 문제는 우리 역사에 인물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많은 인물들을 키우고 지키지 못해온 잘못이 오늘의 우리에게 있음으로 귀결된다. 모든 인간은 양면성이 있기 때문에 인물의 평가에 있어서만큼 흑백논리에 의한 이분법은 적절한 방법이 아닌데도 그같은 칼날로 인물을 재단하다 보니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전북 고창에 위치한 서정주 시인의 기념관인 ‘미당(未堂) 시문학관’은 인물 평가의 모범적인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미당에 대한 일방적인 칭송보다는 그에게 ‘친일문학자’라는 레떼르를 붙여준 작품들도 별도로 전시함으로써 관람객들에게 균형적 시각을 선사하고 있다.
서울의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이루고 있는 경기도 파주의 예술마을인 ‘헤이리’에 생긴 ‘인물미술관’은 이같은 측면에서 큰 기대를 갖게 한다. 다섯개의 전시실에 근현대 인물의 초상화, 조선시대와 중국 명·청대의 초상화 등을 전시하고 있다. 박정희 전대통령의 초상도 장준하 선생, 문익환 목사 등의 초상도 함께 볼 수 있다. 박찬호도 있고 히딩크도 있다.
작은 시도이지만 이같이 우리 사회에서 인물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작업은 보다 활성화되고 확대되어야 한다. 전시자가 인물을 재단하는데 온 힘을 쏟을 필요는 없다. 그대로 보존, 전승시키고 그 판단은 관람객에게, 후손에게 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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