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 "문화온도? 난 아직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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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밖] "문화온도? 난 아직 춥다"

  • 승인 2005-06-01 00:00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매주
수요일이면 지역의 한 도서관에서 문화강좌를 맡아 강사 노릇을 하고 있다. 시작하면서는 문화의 대중화라든지 접근의 평등화라는 그럴싸한 구실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언감생심이지 그런 어마어마한 명제 근처엔 얼씬도 못했다. 회를 거듭하면서, 들꽃 씨앗을 넣고 다니며 외딴곳 황량한 길섶에 뿌리는 집배원의 마음 같은 게 생겨나니 서푼어치의 위안은 든다.

그래도 수요일만 되면 걱정을 떨치지 못한다. 부실도시락 같은 강의가 수강생들로 하여금 시간, 공간, 인간이라는 3간의 흐름을 좁히지 못하고 관심과 소통에서 점점 멀어지게 하지 않을까 하는 아득함 때문이다. 담당 강사 혼자 낑낑댈 일이 아니고 지방자치단체, 문화원, 예술단체, 공공도서관 등이 함께 짊어져야 할 고민이기도 하다.

문화예술정책 측면에서는 특히 그렇다. 프로그램 부적절 내지 형식화, 잡다한 결재서류에의 얽매임, 자체 기획력과 정보 활용 기반 부족 등이 문화친화형 도시에서 멀게 하는 원인(遠因)일 수도 있다. 가치성, 중심성, 공공성과 같은 종합과학적 접근을 요하는 속성은 잘 이해하지만 그 안에 수용자인 시민을 가로막고 주눅들게 하는 요소가 있다면 재고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시민의 입장에서도 향수형이건 참가형이건 창조형이건 특정한 소수 아닌 최대한 다수가 다양한 문화 활동에 거리낌없이 참여해야 한다는 것은 유네스코의 권고 그대로다.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상투적인 의미가 아니다. 지식과 미의식과 가치관이 쌓인 더없이 소중하고 고유한 가치가 문화다. 언뜻 보면 운동화 한 짝 만들어내지 못할지라도 문화 그 자체가 이미 경제의 차원을 높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강의실로 쓰이는 A/V관은 그래서인지 어떤 문화생태학적인 밀실 같다. 착각이라면 아주 행복한 착각일 것이다. 열정 섞인 댄스스포츠나 백화점의 '5억 만들기' 강좌에 가지 않고 안드레아 보첼리를 들으며 강의를 기다리는 모습에서 결례를 무릅쓰자면 내 가족 같은 느낌을 갖기도 한다. 이 작은 공간에서는 문화예술의 서울집중 현상을 탓할 이유도, 필요도 없어진다.

또 다른 측면에서 문화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열쇠는 그 이해자나 감상자 확산에 달렸다고 보면 아마추어가 많아져야 프로가 발전한다는 점이다. 감상자의 육성에 기여하려면 시장재만이 아닌 무상재로도 가능하다. 언젠가 방송 진행하면서 리포터와 실컷 공짜표 성토를 했는데, 관점에 따라 꼭 나쁜 것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

이 말뜻을 곡해해선 안 된다. 대단히 역설적으로 인간을 잉태하는 자궁과 같은 환경을 강조한 것일 뿐이다. 기회를 만든다는 사회적 차원에서는 공짜표나 무료강좌엔 그 효용성에 값하는 뭔가가 분명히 있다. 길거리에 농구대를 만드는 일보다 투자 회임기간이 느리다고 경시하지 말아야 한다. 역시, 길거리에 농구대를 만들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나보다 더 선생님 같은 수강생들에게 노상 전개한 것도 이 같은 논리였다. '누구든 시인이 되고 싶은 욕구가 있다면 그게 시심이고 당신은 곧 시인이다! 화가이고 싶거든 화가가 되어라!…' 순 엉터리 같을 수 있는 말에 용기 백배해 글을 써보고 그림을 그리겠다는 몇몇 '올드 팬'이 생겨났다. 문화는 정신적인 활동 전체라는 독일의 관념론에서, 문화는 인간의 행동양식이라는 영국의 경험론 쪽으로 내 생각이 기울어진 배경도 이런 것이다.

생각이 바뀜에 따라 손만 뻗으면 지역주민들이 탐스러운 문화적 수혜를 누려야 한다는 믿음까지 커졌다. 사람의 눈길이 마주치지 않는 서가 속의 책은 쓸모가 없다. 과실을 따먹지 않는 과수원은 이내 폐농(廢農)이 되고 만다. 생태환경에서 격리되어 생명이 존속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문화도 그와 같다. 또 그와 같아야 한다. 더위로 펄펄 끓어도 지역의 문화온도는 더 높이고 봐야겠다. 알량한 강사료를 위해 인감도장을 꾹꾹 눌러 찍으며 들었던 확신이다. 수요일은 거꾸로 내가 배우고 내가 먼저 충전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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