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들은 학력지수와 인격지수를 동일시한다. 우리나라처럼 학력에 매달리는 나라에서 지식의 깊이가 인격지수의 상승작용으로 이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게도 인성교육 곧 인품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현실을 볼 때 학력지수와 인격지수는 별 상관없이 느껴지기도 한다. 많은 배움이 그 사람의 품격을 높이는데는 별무소용이라면 진정 배움의 가치는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최근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여러 가지 사건을 볼 때 그 사건의 중심 인물이 알만큼 알고,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인 것을 안다.
다른 이들의 눈길을 끄는 그 위치, 그 자리까지 오른 이들이기에 그들의 잘 짜여진 학력과 경력 이력서는 한 장으로 모자랄 정도이다. 그런데 서민으로서는 견주기조차 어려운 그들의 화려한 학력과 경력이 사건을 교묘히 은폐하고, 진실을 가리는데 사용되는 현실을 본다. 또 다른 의미의 식자우환(識者憂患)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어떤 이들은 소유지수와 인격을 동일시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유자체가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많이 가진 자에게 무조건 관대한 사회현상이다. 상대에게 관대해지거나, 머리를 조아리는 이면에는 물신숭배(物神崇拜)와 배금사상(拜金思想)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소유와 인간 됨은 등호가 아니라는 사실을! 사람됨에 하자가 발생할 때 그 손에 들려진 돈은 양약이 아니라 독약으로 변질된다는 사실을 모두가 경험하면서도, 여전히 소유에 집착하는 아픔을 어찌 할 것인가? “사람 나고 돈 났지, 돈나고 사람 났나” 읖조리면서도 세태는 여전히 돈 나고 사람 났다는 쪽으로 기우는 현실을 어쩔 것인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곳은 우리의 자랑 대전광역시 유성에 자리잡고 있는 유서 깊은 호텔커피숍이다. 호텔 입구 정면에는 무궁화 다섯 개가 반짝거린다. 특급호텔이라는 의미이다. 필자가 들어선지 30분이 지났는데도 찬물한잔 가져다 놓고, 아무 반응이 없다. 무엇이 필요한지 도무지 물어보지를 않는다. 필자는 다시 한번 더 깨달았다. 호텔 벽을 찬란하게 장식하는 무궁화의 숫자가 결코 서비스의 내용을 결정짓지 않는 것이라는 평범하다못해 떠올리기조차 싫은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외부로 보이는 것이 내면의 상태를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면의 정신이 외면을 결정짓는 것이란 사실을 상기하게 되었다.
크리스천이라는 타이틀이 기독교인답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의 영혼과 인격이 그리스도를 닮았기에 크리스천이라고 불리는 것이리라. 목사이기에 자동적으로(automatically)목사의 인격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향내가 나기에 비로소 목사의 반열에 서는 것이 아닌가. 품격있는 시민이고 싶다. 품격 있는 목사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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