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 30분 경 아이들을 보내고 나서 창문 단속을 하고 있는데 우리 반 주연이가 머뭇거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책가방을 등에 멘 채 손을 뒤로 감추고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집에 가지 않고 서성거리는 사연이 궁금하여 주연이를 불렀다. 주연이는 뒤로 감추었던 손을 내밀었다. 주연이의 손에 들려있던 것은 얄팍한 잡지 한 권이었다. 아무런 포장도 되어 있지 않은 잡지 한 권! 눈으로 웬 책이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푹 숙이며 어머니가 선생님에게 가져다 드리라고 했단다. 어머니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드리라고 한 뒤 주연이를 보내고 잡지를 훑어보았다. 발행일을 살펴보니 2005년 1월 1일 발간된 ‘샘터’ 잡지였다.
지난 3월 중순 주연이네 집으로 가정방문을 갔을 때의 일이 생각났다. 작년 가을 현장 학습 때 선생님이 주연이의 현장 학습비를 대납해 주었는데 아직 갚아드리지 못했다며 주연이 어머니는 연신 미안해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주연이네 가정 형편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괜찮으니 급식비 밀린 것이나 형편이 허락하는 대로 갚으라고 하자 주연이 엄마는 눈물을 글썽거렸었다.
제자가 경제적인 이유로 현장학습을 가지 못하게 되었을 때 모르는 체 하는 담임이 어디 있을까만 주연이 어머니에겐 나의 보잘 것 없는 행동이 고맙게 생각되었던가 보다. 스승의 날은 다가왔는데 시어른 병치레를 하느라 넉넉지 못한 주연이네 형편에 마땅히 선물할 것은 없고 마침 집에 있던 샘터 잡지를 내게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넉넉지 못한 형편 속에서도 아이들을 씩씩하고 밝게 키우는 주연이 어머니께 내가 고맙다고 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주연이 어머니의 훈훈한 마음이 담긴 선물을 받고 나니 내 23년 교직 생활에서 최고의 선물을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스승의 날 선물을 받지 말라고 했는데 받았다고 누군가 나에게 돌을 던진다면 나는 기꺼이 그 돌에 맞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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