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가의 안팎에서 말싸움과 신경전이 예사롭지 않다. 어찌 보면 언론이 흥행을 계산하여 앞장서 중계한다는 인상도 받지만, 없는 일 만든 것이 아니니 걱정스러울 뿐이다.
세 치 혀로 경세(經世)와 정사(政事)를 논하는 논객이나 세객도 사적(私的) 기 싸움으로 백성을 불편하게 하지 않았다. 국정·도정·시정의 수장들이 뒤엉켜 말로써 기 싸움을 하는 예도 극히 드문 현상일 것이다. 이견이 있고 잘못이 있으면, 대화와 토론을 통하여 해결책을 찾는 것이 정치 상식이요, 도리이다. 이건 마치 방자와 향단이를 가운데 끼고 사랑싸움을 벌이는 수준이다. 점입가경. 급기야 여야 거대 양당이 이 싸움을 거들고 나왔다. 아무리 싸움 구경과 불 구경이 재미있다지만 부끄러움이 앞선다.
지금의 우리 정치풍토는 서로를 인정하지도, 이해하지도 않는다. 거대 양당의 지배 탓인지 흑백·호오(好惡)라는 이분법적 잣대에 의해 문제를 제기하고, 그 문제를 풀어나간다. 또한, 막히면 무작정 미뤄둔다. 그래도 누구 하나 뭐라 하지 못한다. 그러니 거대 양당이 안정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힘만 양분한 채 불안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는 때문인지 서로가 서로에게 오만하고 버릇없다며 한판 단단히 붙을 태세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이런 말싸움과 기 싸움이 정치나 행정 발전에 아무런 도움도 못 된다는 것이다. 명분 없는 싸움이다 보니 기껏해야 당사자들의 자존심 문제로 귀착되고 말 것이다.
주장과 이견은 모두 국민이 지켜보는 ‘광장’으로 나와야 한다. 이 광장으로 나오지 못하는 주장과 이견은 사견(私見)이자 감정일 뿐이다. 정치와 행정을 힘의 논리를 앞세워 사유화할 것이 아니라면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열린 광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념과 입장이 아닌, 국가의 공동 선과 국민 공익의 잣대로 논의되어야 한다. 생각이 다르고 가치관이 달라 상대의 견해에 반발하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사적인 것인가 공적인 것인가는 가려야 마땅하다. 공인이 사사로움에 좌우되어 말싸움과 감정싸움으로 치닫는다면 그에 따른 손실은 누가 보는 것인가. 싸움 당사자들이야 자존심 좀 상하고, 욕 좀 얻어먹는 것으로 끝나지만, 사사로움과 감정이 개입된 정치와 행정은 질서와 네트워크를 파괴하는 것이다. 그런데 각자의 소속 정당이 응원을 하고 나섰다.
우리나라에는 오직 두 가지 법칙과 이치만 존재한다는 말인가. 열린우리당의 법칙과 한나라당의 법칙에 앞서 국민의 법칙이 있음을 잊었다는 말인가. 국민의 법칙은 ‘공평한가, 생산적인가, 공익이 있는가’이다. 대한민국은 정치가 국가와 국민을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국가를 이끌고 그 덤으로 정치인을 이끌어 간다. 이는 국민의 이름을 팔았지만, 결국 국민으로부터 정치가 심판 받은 몇몇 역사적 사례를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이제, 세상도 수준도 패러다임도 모두 바뀌었다. 예전에는 정치인이 만담과 개그도 하던 시절이었으나, 이젠 소재 자유화로 정치인의 개그는 개그맨에 못 미친다. 경쟁력을 잃은 것이다. 정치인은 오로지 정치 속에서 경쟁력을 찾아야 한다. 시정잡배들의 쌈질은 법의 심판을 받듯 정치가와 행정가의 소모적인 쌈질은 국민의 심판을 받는다. 묻는다. 당신들의 개별적 언행과 사적 세력이 아직도 힘이 있다고 믿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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