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화합이 아니면 위 모든 것은 병들고 파탄에 빠지고 충돌·파괴되며, 따라서 고해 속에 헤매고 좌절·불행·공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코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주적인 것으로부터 나 개인의 심신에 이르기까지 필연적으로 관통되어, 누구나 실감하는 철칙이다. 그러기에 이 모든 생명체와 그 부수적 존재들은 본래대로 그냥 있으면 제대로 화합하여 스스로 편안하고 화평하고, 번영· 발전하며, 행복 자재하게 마련된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 인간 개인의 마음에서부터 선·악 관념의 대립·갈등으로 화합의 바탕을 깨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써 화합의 실체를 포기하여, 집단적으로 상호 투쟁·쟁탈·살상을 서슴지 않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간 집단, 사회·국가·국제 관계에서도 여러 형태의 전쟁을 일삼고, 따라서 화합을 상실한 재앙으로, 흉악한 범죄, 극악한 질병, 처참한 죽음, 가공할 재변에로 도로 빠져서, 구제할 길 없는 고해·지옥을 맴돌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추잡하고 오염된 이 세상, 아수라장에서 일찍이 종교가 창출·성립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험난한 진흙탕에서 피어난 일대 연화요, 황폐한 대지 위에 솟아난 찬연한 우담바라였다.
모든 종교가 평화·안녕, 그 행복을 위하여 화합을 제창· 강조하여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종교들이 이를 주창하면서도 이론이나 실제에서, 이 화합을 명실공히 실행·실현하지 못하고, 어떤 종교는 유사시에 그 화합을 오히려 짓밟는 사례가 얼마든지 있어 왔다. 이런 가운데, 참으로 그 화합을 이론화하고 실천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모든 것을 바쳐 온 종교가 바로 불교라는 것이다.
이 불교는 지혜와 자비의 종교로서 적극적인 행복학과 행복의 질을 제시·실천해 왔다. 그리하여 불교는 폭력과 침략·살상 앞에서도 인욕으로 무저항·비폭력을 실현해 보였다. 그래서 당시 당장에는 빼앗기고 패망하였지만, 오랜 평화사·번영사·행복사의 거센 흐름 위에서, 최후의 승리, 그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이었다. 그러기에 불교는 화합의 종교로서, ‘종교는 화합이다’를 실증해 주는 터다.
지금도 불교는 전 세계 불교국, 그리고 한국, 우리 고장에서 유구한 전통을 이어, 우리 민족과 세계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향한 ‘화합’을 실현하기 위하여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게 바로 화합을 위한 보살행이다.
이처럼 희생적 보시로 벌이는 화합의 한마당에는, 그 질량만큼 장애가 따르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전국 사암이나 불교기관, 신행단체 등에서 불화와 갈등이 없지 않고, 종교 간에도 난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원래부터 불·보살의 이름으로 자비·인욕하고 보시·관용하면서, 화합을 조성하는 데에, 결코 조급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기실 이 화합이란 장엄한 광명이요 거룩한 향기다. 따라서 태양이 뜨면 모든 곳을 밝게 비추고, 꽃이 피면 누구나를 맑고 향기롭게 만드는 것과 상통하기 때문이다.
이번 부처님 오신 날을 기하여 경향 각지 방방곡곡에서는 부처님의 자비 광명으로 탑을 세우고 연꽃을 피우고 향불을 켰다. 지금도 꺼지지 않는 그 광명과 향기는 자비·평화·행복을 이루는 화합으로 찬연히 피어오를 것이다. 이제 ‘불교는 화합이다’라고 외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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