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나뿐이겠는가마는 그 험악한 얼굴로 침 튀기는 영상매체에서 나오는 소위 지도자들, 매일 어떻게 하면 세금 더 거둬들일까 궁리하는 정부 발표문, 자기는 변하지 않으면서 변해야 산다고 외치는 직장의 간부들, 남의 자식은 사시다 뭐다 해서 펄펄 날뛰는데 아직도 주머니 내미는 자식들, 별것도 아닌데 목소리 큰 이웃들, 누가보아도 보잘 것 없는데 어마어마한 권력을 휘두르는 그렇고 그런 부류의 사람들, 어느 것 하나 믿고 본받을게 적은 이 땅에 웃을 일이 뭐 있겠냐고 자조섞인 푸념을 쏟아낸다.
그런 중에서도 웰빙이다 뭐다 해서 운동과 음식 가려먹는데 이골난 사람들은 무척이나 바쁘다. 그런 서클에 들지도 못하는 나는 코가 꽉 막히지만 출퇴근 걷기에 익숙해 졌다. 물론 같은 길을 걷지만 하루에도 여러 가지의 사건을 목격한다. 실버교통대 란 자켓을 입고 초등학교 앞 건널목에서 열심히 교통정리를 하던 중 자전거를 금방 잃어버리고 혀를 차던 할아버지의 한숨, 무얼 하러 나온지도 잘 모르는 것 같은 녹색 어머니회란 재킷을 입고 교통 도우미에 나온 젊은 학부모 어머니가 대조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게 우울한 일만 있는 게 아니다. 아침저녁으로 부르릉 부르릉 백합다방 간판을 단 오토바이를 타고 짧은 바지아래 늘씬한 다리를 뽐내며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고 배달하는 영화배우보다 예쁜 미스 리(어떻게 성을 아느냐면 어느 날 배달 갔다 나오는 집에서 들었다)를 보는 것은 관음증 증세도 아니오, 페미니스트도 아닌 삶의 현장이다. 나는 백합 다방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요사이 다방에서 커피 한잔 값이 얼마인지도 잘 모른다. 처음에는 배달해서 차 마시는 사람들을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백합다방 미스 리를 본 뒤로는 충분히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제 퇴근길에 신호등 저쪽 길에서 교통순경에게 백합다방 미스 리가 안전모를 쓰지 않았다고 적발당한 것이다. 아니, 그쪽이나 이쪽 모두 견인해 가겠다고 쓴 경고판을 우습게보고 주차해 있는 차들은 어제나 오늘 변함이 없는 데, 힘없는 미스 리만 적발하다니 화가 나 쳐다보니, 미스 리는 뭐라고 하면서 앞 바구니에서 안전모를 꺼내 쓰고는 경찰들에게 손까지 흔들며 부르릉 부르릉 그 늘씬한 다리 뽐내며 달려갔다. 백합다방 미스 리,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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