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춘추]백합 다방 미스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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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춘추]백합 다방 미스 리

  • 승인 2005-05-20 00:00
  • 김영수 한남대 학생종합지원센터 소장김영수 한남대 학생종합지원센터 소장
언제부터인가 웃을 일이 별로 없다 보니 거울을 보아도 인상이 썩 좋지 않다. 나이 사십이 넘으면 자기 얼굴은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는 링컨의 말도 있고 해서 나는 하루 만보 이상을 걸으면서 볼을 잡아당기고 다문 입술을 벌려 웃는 얼굴 연습을 자주 한다. 때론 지나가는 사람들이 실없는 사람 같다고 힐끗힐끗 쳐다보지만 상관 않는다.

어디 나뿐이겠는가마는 그 험악한 얼굴로 침 튀기는 영상매체에서 나오는 소위 지도자들, 매일 어떻게 하면 세금 더 거둬들일까 궁리하는 정부 발표문, 자기는 변하지 않으면서 변해야 산다고 외치는 직장의 간부들, 남의 자식은 사시다 뭐다 해서 펄펄 날뛰는데 아직도 주머니 내미는 자식들, 별것도 아닌데 목소리 큰 이웃들, 누가보아도 보잘 것 없는데 어마어마한 권력을 휘두르는 그렇고 그런 부류의 사람들, 어느 것 하나 믿고 본받을게 적은 이 땅에 웃을 일이 뭐 있겠냐고 자조섞인 푸념을 쏟아낸다.

그런 중에서도 웰빙이다 뭐다 해서 운동과 음식 가려먹는데 이골난 사람들은 무척이나 바쁘다. 그런 서클에 들지도 못하는 나는 코가 꽉 막히지만 출퇴근 걷기에 익숙해 졌다. 물론 같은 길을 걷지만 하루에도 여러 가지의 사건을 목격한다. 실버교통대 란 자켓을 입고 초등학교 앞 건널목에서 열심히 교통정리를 하던 중 자전거를 금방 잃어버리고 혀를 차던 할아버지의 한숨, 무얼 하러 나온지도 잘 모르는 것 같은 녹색 어머니회란 재킷을 입고 교통 도우미에 나온 젊은 학부모 어머니가 대조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게 우울한 일만 있는 게 아니다. 아침저녁으로 부르릉 부르릉 백합다방 간판을 단 오토바이를 타고 짧은 바지아래 늘씬한 다리를 뽐내며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고 배달하는 영화배우보다 예쁜 미스 리(어떻게 성을 아느냐면 어느 날 배달 갔다 나오는 집에서 들었다)를 보는 것은 관음증 증세도 아니오, 페미니스트도 아닌 삶의 현장이다. 나는 백합 다방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요사이 다방에서 커피 한잔 값이 얼마인지도 잘 모른다. 처음에는 배달해서 차 마시는 사람들을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백합다방 미스 리를 본 뒤로는 충분히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제 퇴근길에 신호등 저쪽 길에서 교통순경에게 백합다방 미스 리가 안전모를 쓰지 않았다고 적발당한 것이다. 아니, 그쪽이나 이쪽 모두 견인해 가겠다고 쓴 경고판을 우습게보고 주차해 있는 차들은 어제나 오늘 변함이 없는 데, 힘없는 미스 리만 적발하다니 화가 나 쳐다보니, 미스 리는 뭐라고 하면서 앞 바구니에서 안전모를 꺼내 쓰고는 경찰들에게 손까지 흔들며 부르릉 부르릉 그 늘씬한 다리 뽐내며 달려갔다. 백합다방 미스 리,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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