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12시경, 늦잠을 자다가 아침밥도 못 먹고 허둥지둥 달려 왔을 벌을 받던 우리 학생들이 배가 고플 것은 뻔한 이치다.
이때 경륜이 높으신 선생님 한 분이 지나가시다가 “떡 먹고 싶니?” 하자 학생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눈에 광채를 띠면서 일제히 “예”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 선생님은 떡을 접시에 가득 담아 학생들에게 주었다. 떡접시를 말끔히 비우고 학생들은 다시 벌을 받고 있었지만 표정은 아까보다 한결 환해졌다. “너희들 목마르지?” 그 선생님의 말씀에 학생들은 완전히 흥분했다. 어떤 학생은 양쪽 입 꼬리가 귀에 가 붙을 정도로 감격했다.
그 후로 한참이 지나고 학생들의 담임선생님으로부터 결석, 지각을 자주하고 공부도 게을리 하던 학생들의 생활 태도가 상당히 달라졌다는 고무적인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 선생님은 그 날의 잔잔한 감동 덕분에 학생들 인사를 받기에 더욱 바빠지셨다고 한다.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우리 속담은 그 함의가 매우 크다.
미운 아이에게 떡을 하나 더 주는 일은 아이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믿음과 사랑은 대상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이해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에서 가능하다.
아이들의 고민과 방황, 불만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서는 그들에게 다가갈 수 없다. 열리지 않은 마음 앞에서의 기계적인 훈계는 공소하다.
교육은 어쩌면 벌과 보상의 절묘한 배합인지도 모른다. 벌은 인간 행동을 수정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서양 사람들의 가정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회초리가 벽에 걸려 있다. 우리 속담에도 ‘매 맞고 큰 아이치고 효자 아닌 사람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교육적 효과면에서 볼 때 벌은 보상에 견줄 바가 못 된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고 한다.
학생들을 사랑하는 그 원숙한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가르치는 일은 하면 할수록 어렵다’는 말의 의미를 천착하게 된다. 학생들을 이해하고 믿고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내리는 벌과 보상은 그들을 울게도 하고 웃게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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