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누군가가 필자에게 “당신은 정말로 소중한 스승님이 계십니까?”라고 질문을 한다면 “예”라고 말할 자신이 있다. 필자에게 자신 있게 “예”라고 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준 분을 오늘 이 귀중한 지면을 빌려 소개하고자 한다.
피터 바브라스(Professor Peter Barberis), 필자가 처음 그를 만난 것은 청운의 꿈을 안고 영국 유학길에 올랐던 1996년 9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 후 우리는 서로의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면서 때로는 서로를 공격하는 논객으로서, 때로는 친구처럼 편안하게 그렇게 삼년 여를 보냈다. 물론 누구에게나 있음직한 과정들일 것이다. 오늘 필자가 그의 얘기를 하는 이유는 가장 힘들고 행복했을 때 보여준 그의 예견치 못한 행동들(?) 때문이다.
한번은 2000년 6월 27일 학위논문을 심사받던 날, 나는 그의 전화를 받고 아침 일찍 우리가 자주 가던 구내식당엘 갔다. 그는 나를 보는 순간 언제나 처럼 다정스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슬며시 바지자락을 올리면서 “최군! 오늘 내가 신은 양말 기억나니?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네가 나에게 준 선물이야. 왠지 오늘 이 양말을 신고 있으면 네게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 이렇게 신고 왔어. 오늘 너에게 행운이 있을 거야”라고 말을 했다. 3년여의 노고가 평가되던 날 그의 “널 위해 이 양말을 신고 왔어”라고 했던 그 한마디가 그 어떤 격려의 말보다도 힘이 되었고, 그 말은 지금 강단에서 강의를 하는 필자에게 제자를 생각하는 하나의 지침이 되고 있다.
또 한 번은 2000년 7월 11일 졸업식이 있던 날의 일이다. 런던에 중요한 선약이 있어 참석하지 못할 거라던 그가 평소에 매지도 않던 타이까지 매고 나타나 “닥터 최 놀랐지?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야 네 졸업식이 중요할 것 같아 왔어. 이거 1996년산 와인인데 나 이거 구하느라고 힘들었어. 내가 왜 1996년산을 골랐는지 알겠니? 그건 우리가 처음 만났던 때를 영원히 기억하고 싶어서야!”라고 했던 그의 예기치 않았던 언행(?)에 눈물을 흘렸던 순간을 지금도 난 잊을 수가 없다.
지난달 필자는 중앙부처의 프로젝트관계로 영국 출장을 갔었다. 물론 짬을 내 5년여를 기다린 흥분으로 그를 만났다. 그러나 그는 흥분도 가시기도 전에 나에게 폭탄선언을 하셨다. 2년 후에 명예퇴직을 하시겠다는 것이다. 57세의 나이에 말이다. 이유인 즉, 더 늦기 전에 그동안 나에게 베풀어 준 사회와 학교에 책의 집필을 통해서 보답을 하고 싶어서란다. 한국적 상식에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교수님의 결심이다. 외국에서 정교수(professor)가 누리는 편익이 얼마나 큰데….
그분은 나에게 또 다른 큰 가르침을 주고 계신 것 같다. 어찌 그분이 내 스승님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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