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순택 논설위원 |
대략 설계그림이 잡혔다고 곧바로 치목(治木)을 하고 조립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집주인의 사주(四柱)와 풍수를 살펴 날을 잡는다. 나무를 베는 날, 터 닦는 날, 주춧돌을 놓는 날, 기둥을 세우는 날 등등 모든 일에 때를 따랐다. 이것이 시(時)다. 그래야 집을 다 지을 때까지 사고가 없고 나중에 집에서 살 사람들이 편안하다고 믿었던 것이다.
심대평 지사가 새 집을 짓겠다고 한다. 내달 정치아카데미 개원하고 8월께 신당주비위 구성-연내 창당-내년 지방선거 참여라는 구체적인 로드맵도 내놓았다. 이에따라 신당이 과연 중앙정치권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면모를 갖출 수 있을까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행여 제2의 지역당 소리를 듣는 건 아닌지하는 우려도 있다. 심 목수의 집이 어떤 모양이 될 지 기대반 우려반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시와 세는 갖췄다고 할 수 있다. 행정수도 문제로 우여곡절을 겪을 때 주변에서 영남이나 호남 같으면 어땠을까 하고 묻는 사람이 많았다. 충청민들이 그들보다 결집력이 약하다 치더라도 충청권의 힘이 너무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던 것이다. 이용만 당하고 속아왔다는 상처입은 자존심 그런게 고여있는 것이다.
반열린우리당 비한나라당의 지역 정서는 그 표출이며, 충청의 정서를 대변해줄 정당의 출현에 교감하고 공감하고 호응하는 바람이 부는 이유다. 그러니 시와 세는 얻었다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 집의 모양새는 그림이 잡히지 않는다. 다만 ‘집은 주인을 닮아가고 주인은 집을 닮아간다’했으니, 심 지사의 말을 더듬어가면 집 모양을 추정해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일단 큰 틀은 ‘탈 이념 정책정당, 분권형 지방정당’이다.
심 지사는 “수도권 영·호남 등이 각자 정치세력을 형성하고 또 자유롭게 연합해 국정운영에 참여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표현만 가지고 액면 그대로 해석하자면, 지역을 바탕으로 한 각각의 정치세력이 정책을 내놓고 공감하는 정책에 따라 연합해 국정을 이끌어 가자는 것이 될 것 같다. 그렇게 보면 나쁘지 않다.
중앙정치권은 이를 두고 지역할거주의를 부활시키자는 것이냐고 폄훼하지만, 그렇게만 볼 게 아니다. 사실상 지역할거주의 부활은 앞으로는 어렵다고 본다. 민주화가 진행되고 지방분권이 강화되면서 지역정치 베이스도 분열돼 가고, 중앙국가 역할도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디긴 하지만 지역주의의 자리를 정책이 대체해 가는 게 지금의 추세이기도 하다.
지방분권의 역사도 일천하고 제대로 되지도 않은 우리에게 그런 분권형 정치가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거꾸로 표류하고 있는 지방분권을 앞당길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지방분권은 궁극적으로 중앙과 지방이 같은 위치에 서는 것이다. 지방분권이 여태 표류하는 이유는 중앙에서 권력을 놓지 않고 지방을 깔고 앉으려 하기 때문이다.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와 같은 반열에 선다면 분권의 속도는 훨씬 빨라질 게 분명하다.
문제는 여전히 집의 모양새다. 지향점은 나왔지만 추진 세력, 성격은 아직 모호하다. 심 지사가 기둥을 세우고, 상량식을 하고, 지붕을 얹을 때마다 사람들은 기대를 높이거나 실망을 할 것이다. 실망을 줄이는 길, 그게 지금 심 목수가 할 일이다. 중앙권력을 기웃거리는 듯한 모습은 안 된다. 보는 이들을 실망시켜서는 훌륭한 목수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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