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 독 : 빌 콘돈 주 연 : 리암 니슨, 로라 리니
성은 신비하고 오묘하며 선악을 함께 갖는다. 성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있으며 그 가치관과 윤리관이 달라지고 있다. 한국의 성은 그간 은밀한 곳에서 양지바른 곳으로 나오고 있다.
부부간의 성행위조차도 시비를 따져 법의 잣대를 들대는 시대가 왔다. 현재 열린우리당이 부부간강간행위에 대해 형사처벌할 수 있는 법을 여야가 합의로 국회에 제출하려 하고 있다.
이 법은 부부 한쪽에서 폭력이나 강압에 의해 성행위를 했을 때 성립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은 찬반으로 나뉘고 있는 실정이다.
1950년대 미국의 성을 파헤친 영화가 있다. 1948년 미국은 ‘인간에 있어서의 남성의 성행위’라는 제목의 보고서 하나 때문 에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 여기에 기술된 인간의 성행위에 대한 연구는 누가 봐도 낯 뜨거울 만큼 상세했다.
인디애나대학 동물학 교수였던 앨프리드 킨제이 (1894~1956)는 개개인의 은밀한 성생활 습관과 방식 등을 조사하기 위해 방대 한 질문지를 만들어 그와 같은 보고서를 작성했다.
5년 후인 1953년에 발표한 ‘인간에 있어서의 여성의 성행위’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가 두 보고서 작성을 위해 인터뷰한 대상자는 총 1만2000여 명. 이후 사람들은 그에게 진정한 학자와 사탄이라는 두 가지 꼬리표를 달아줬다.
킨제이의 생애를 다룬 영화 ‘킨제이 보고서’는 보수적인 미국 사회에 엄청난 충격과 혼란을 안겨준 그가 고뇌 속에서도 묵묵히 연구를 거듭한 진정한 학자였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금기의 학문에 도전한 한 학자의 용기와 집념을 주제로 하고 있다. 소재가 저급하다는 이유만으로 창조적 발상이 묵살될 때 학문도 세상도 발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웅변한다.
영화는 1940년대로 후반으로 빠져든다. 주일학교 목사였던 아버지 밑에서 엄하게 자란 킨제이(리암 니슨)는 아버지 뜻대로 공대에 진학하지만 어렸을 적 꿈을 이루기 위해 생물학과로 옮긴다.
하버드대 졸업 후 인디애나대에서 생물학을 강의하던 그는 현실적인 성교육을 바라 는 학생들의 뜻을 좇아 ‘결혼생활’이란 강좌를 맡는다.
하지만 강의에 필요한 학술적인 자료가 전무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킨제이는 그때부터 실증적인 섹스 리서치에 돌입한다.
록펠러재단으로부터 엄청난 지원비를 받아가며 연구한 그는 전 세계 생물학자와 심리학자들이 깜짝 놀랄 만한 성과물을 두 번이나 세상에 내놓는다.
그는 인터뷰 대상자들의 성행위를 심지어 녹화까지 해가며 분석했다. 대신 그 들의 비밀을 철저하게 지켜주며 성행위에 대한 모든 것을 밝혀냈다.
하지만 치 부를 건드렸다고 부끄러워하는 속세 사람들은 그를 마귀로 몰아가고 급기야 재 단의 연구비 지원도 중단된다.
재미있는 것은 킨제이가 인간의 섹스 연구에 관심을 두게 된 연유에 있다.
20 년 동안 수백만 마리가 넘는 벌을 모은 그는 그 작은 생물조차도 한 마리 한 마리가 모두 다르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한다. 그는 이 개념을 인간의 성행위에 적용했다.
인간은 각자 독특한 성적 기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섹스를 이야기할 때 ‘정상·비정상’이란 단어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킨제이는 인간의 성행위에 ‘보편적이다·드물다’의 평가만 내 릴 수 있다고 처음으로 말한 학자였다. 그의 성담론이 물씬 풍기고 있다. 현대판 ‘킨제이 보고서’는 누가 어떻게 만들지 기대가 된다.
13일 개봉. 상영시간 118분. 18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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