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성남 주필 |
이와 함께 우리는 최근의 독도문제는 물론 검정 교과서에서부터 약탈 문화재 반환 및 위안부 보상에 이르기까지 전쟁피해국가가 요구해온 사안에 대해 조금도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는, 오히려 한국과 중국 등 인접국의 감정만 더욱 악화시키는 발언을 일삼는 일본과 달리 독일은 과거 제2차대전을 일으킨 전범(戰犯)으로서의 잘못을 철저히 반성하고 이를 주변국에 적극적으로 알리는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점 또한 우리의 눈길을 모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2차대전의 패전국으로 승전국 미국과 소련에 의해 경제·사회 시스템이 마비되고 나라 전체가 피폐해진 최악의 상황에서 ‘Made in Germany’로 일컬어지는 품질제일주의를 바탕으로 ‘라인강의 기적’을 일구어 유럽 최대의 경제대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과거 우리에게 광산과 병원의 나라로 더 알려졌던 독일의 부흥을 가져온 노하우는 무엇이었을까.
그 비결은 역시 사람, 즉 지도자였음을 알 수 있었다. 경제 기적의 아버지로 경제정책을 주도한 ‘루드비히 에르하르트’, 독일 건국의 아버지로 정치의 틀을 구축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정착시킨 ‘콘라드 아데나워’, 초대 대통령으로 안정을 추구했던 ‘데오도르 호이스’ 3인이 바로 그들이며, 이들은 서독의 기초를 닦은 인물로 오늘날까지 서독 국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아데나워 前총리는 1933년 히틀러에 의해 쾰른시장의 직위가 해제된 지 16년만인 1949년 독일 제1대 총리에 오른 후 1963년까지 14년간 총리직을 수행하는 노익장을 과시했다. 73세의 노령에 총리에 취임해 국내적으로는 패전 이후 극심하던 사회갈등을 해소하고 국력을 집중시키는 탁월한 정치적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패전국 독일을 재건시킨 아데나워 총리의 정치스타일은 어떠했을까.
그는 경제문제는 에르하르트 경제장관에 일임하는 한편, 원칙과 전통을 중시하고 ‘실험은 없다’는 슬로건 아래 반공주의, 경제기적에 대한 국민적 열정을 고취하고 공동체의식을 강화했다. 아울러 나치의 과거로부터 깨끗하다는 점이 국민적 신뢰를 이끌어내는 바탕이 되었고,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열정과 믿음, 정확한 판단력과 결단력을 발휘함으로써 대내외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평가된다.
이같은 독일의 과거를 살펴보는 것은 지금 우리 역시 지도자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재·보선이 끝난 후 지역정가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논의들이 회자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논의의 핵심은 무엇일까. 누구누구가 어느 정당으로 가고 어떤 정당의 지지도가 어떻고 하는 정치적 담론의 한 가운데에는 결국 어떤 사람이 지역의 주도권을 행사하는 위치를 차지하는가로 모아진다.
이는 누가 우리 지역을 이끌어나갈 역량과 자격을 갖춘 인물인지를 선별해내는 안목에 달려있음을 말해주는 것으로 결국 지도자의 중요성으로 귀결된다. 그 어느 때보다 지역발전의 전기가 좌우될 시기에 처해 있는 대전·충남 지역민들의 입장에서 어떤 자질과 품성·능력을 지닌 인물을 지도자로 내세워야 하는지 고민의 대장정은 벌써 시작되었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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