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보내놓고 교실 정리 좀 하자는 생각으로 편한 차림으로 갈아입는데, 바지 주머니에서 기분 좋은 묵직함이 느껴진다. 손을 넣어 보니 지난 현장학습 때 아이들이 내게 건내 준 것들이다. 주머니 바닥까지 훑어 올리니, 사탕 하나 껌 두 개, 바스락거리는 비스킷까지 따라 나온다. 그 속에 아이들의 풋풋한 정까지 연달아 빠져 나오고, 바라보는 내 마음에 따뜻함이 번진다. 아이들 나름대로의 사랑이 느껴진다.
요즘 방송 매체에서는 연달아 촌지 수수니 불법 찬조금이니 하는 고약스런 말들이 우리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묵묵히 아이들을 가르치는 대다수의 선생님들을 자괴감에 빠지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해마다 스승의 날을 앞둔 이 즈음이면 금품 수수니 향응 접대니 질책의 목소리로 교단을 한 차례씩 흔드는 일이 무슨 연례행사나 되어 버린 기분이다. 언제부터였을까. 선생님을 바로 보지 않고 불신과 비판의 대상으로 생각하게 된 것일까.
내 어릴 적, 먹고 살기 바빴다던 그 시절. 평생 농사일에만 매달리던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 어디 틈 내서 자식 선생님 한 번 찾아 볼 여유가 있었으랴. 그랬어도 묵묵히 뒤에서 믿음으로 지켜보시며 순수한 교육애로 선생님 가르침에 힘을 실어 주시던 분들이다. 그 어떤 선물보다도 우리 선생님들에게 그리운 것은, 힘을 주는 것은 부모님들의 선생님을 바라보는 순수한 존경심이다. 부모님이 선생님을 존경하고 신뢰하는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들 또한 선생님을 믿고 따라 그 교육력이 배가되지 않겠는가. 부디 따뜻한 정과 두터운 믿음을 주고받는 순수한 교육풍토가 하루 빨리 자리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스승의 날은 우리가 가장 존경하는 세종대왕이 태어나신 날로 교권존중과 교원의 사기진작, 그리고 지위향상을 위하여 지정된 기념일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근래 들어 그 유래와는 다르게 5월을 앞 둔 이 맘 때면 선생님들을 향한 질타의 목소리에 찹잡한 심정을 감출 길이 없다. 우리 모두 민족의 스승인 세종대왕 탄신일을 스승의 날로 정한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선생님은 스승으로서 자신의 길을 돌아보는 날로, 사회는 존경과 신뢰로 스승의 은혜를 기리는 날이 되었으면 한다.
현장학습 가는 날, 교탁 위에 놓인 음료수와 과자 봉지에 담긴 아이들 따뜻한 마음을 읽으며 무엇보다도 큰 위로를 받는다. 오늘도 아이들의 까만 눈망울만을 바라보며 묵묵히 가르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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