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 기념관 개관 기념사업으로 주최한 미국 고교생 에세이 대회에서 한국계인 17세의 이미한 양이 1등을 차지했다는 것이다. 주최 측은 저 유명한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과 같은 길이인 272단어를 넘지 않는 선에서 영어로 ‘링컨과 새로운 자유의 탄생’ 에 대해 쓸 것을 주문했고, 자신을 한국계 미국인이라고 밝힌 이미한 양은 ‘나는 이국에서 태어난 첫 세대로서 또한 새 세기가 시작되는 시점의 미국 청소년으로서’ 라며, 자신의 정체성이 한국이 아니라 미국임을 분명하게 밝히면서 다음과 같이 문맥을 이어나갔다고 한다.
“항상 조리 있게 말하거나 옳은 말만 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나는 항상 내 자신의 고유의 언어로 말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미한 양의 외증조부가 우리 국어학계의 한 상징인 건제 정인승 선생이라는 점이다. 건제 선생은 일정 때 이희승 최현배 선생과 함께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투옥된 경력이 있는 애국투사이고, 1986년 타계할 때까지 50년 이상 한글학회의 이사를 맡아 우리말 지키기에 앞장서서 국민훈장 모란장과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선각자인 분이다. 그런 혈통을 이어받은 이미한 양의 부모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수많은 재미교포의 일원이 된 것은 하등 논란거리가 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미한 양이 글을 통해 “나의 외증조부는 1940년대에 한국최초로 한글사전을 만들려 했다는 이유로 한글말살정책을 취했던 일본 당국에 의해 체포됐었다” 라고 밝힌 점이나 “나는 내가 외증조부로부터 물려받은 자유의 정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라는 대목을 읽노라면, 하필이면 훌륭한 한글학자의 자손에 의해 영어로 쓴 글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감회를 머금게 된다.
특별하게도 이 글의 작자인 이 양은 부시 대통령 등 미국의 유력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자리에서 ‘새로운 국가, 새로운 세기, 새로운 자유’ 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글을 낭독할 기회를 가졌고, 뒤이어 부시 대통령은 “자유사회에서의 삶에 대해 유려하게 표현해준 이미한 양에게 특별한 감사를 보낸다”고 치하했다고 한다. 링컨 대통령 고향인 일리노이주 주지사인 로드 블라고야비치도, 이 양이 SAT의 고득점자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중간 이하의 SAT 점수를 받았던 내가 주지사가 되었으니 이 양은 미국 대통령도 될 수 있을 것” 이라는 듣기 좋은 덕담을 했다는 말도 전해지고 있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을 보면, 이미한 양의 이름은 미리 이런 흥겨운 사태를 예견하고 ‘미한’으로 지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데, 과연 이미한 양은 한글학자의 후손답게 우리말과 글을 빼어나게 구사할 수 있을까. 가랑비에 조금씩 옷이 젖듯 미국의 말과 글에 하루하루 물들어 가고 있는 이런저런 요즘 세태와 연관하여, 새삼스럽게 이미한 양의 글 제목인 ‘새로운 국가, 새로운 세기, 새로운 자유’를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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