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초대석]아버지의 푸른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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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초대석]아버지의 푸른 목소리

  • 승인 2005-04-25 00:00
  • 중부대교수중부대교수
사흘 째 되던 날은 윷 결승전이 벌어지는 날이었다. 초조하게 기다렸다. 며칠 후 집에 오신 아버지는 막 출옥한 사람이었다. 광목 한 통을 들고 오셨다. 이등을 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재산 목록 1호인 송아지 한 마리를 놓친 것이다. 다 이겨놓은 판을 그 흔한 개 하나 던지지 못한 것이 막판의 통한이 되셨다고 한다.

얼마간 아버지는 약주를 자주 드셨고 그 흔한 개 하나 던지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오랫동안 우리 마을의 전설 같은 이야기가 되었다. 얼마나 절박했으면 아버지는 송아지 한 마리에 당신의 모든 명운을 걸었을까.
그 후부터 아버지는 계속해서 윷을 노셨다. 화려했던 그 옛날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돈을 잃었다.

아버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윷 실력을 과시해보고 싶었다. 장날마다 들어오시지 않았다. 어머니와 나는 밤길을 마중 가곤했다. 그 때마다 ‘모냐’ 하며 늦게까지 윷판을 벌이고 계셨다. 사람들은 풍채 좋은 아버지가 돈깨나 있는 것처럼 보였던지 자꾸만 달라붙었다. 살림은 기울어져갔고 우리들의 학업은 한 해씩 쉬어야했다. 전답은 하나씩 팔려갔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오면 기분이 좋았고 아무 소리가 없을 때는 불안했다. 아버지가 돈을 따면 우리는 기쁘고 아버지가 돈을 잃으면 우울했다.

어디든 아버지는 빠른 걸음으로 늘 어머니를 앞질러갔다. 저녁 나절 주막집을 거쳐갈 때면 더욱 걸음이 빨랐다. 어머니의 은근한 눈치가 얼마나 마음에 걸렸으면 그랬을까. 아버지는 막걸리 한 잔이 그렇게도 간절했으리라.

마음만은 남의 편에서 궂은 일을 도맡아 하신 아버지. 그렇게 했으면서 남들한테는 그렇게 좋은 소리 못 들으셨던 아버지. 고마움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았던 아버지. 나는 나의 아버지를 아직도 모른다. 잊을 수 없는, 윷이 하늘 높이 올라갈수록 신명났던, ‘모냐’ 하던 아버지의 그 푸른 목소리를. 모가 쏟아지면 멍석 위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시던 내 아버지의 모습을 나는 평생 잊을 수 없다.

오른 손에 광목 한통을 들고 먼 산을 바라보는 우수에 찬 아버지의 흑백 사진 한 장. 그것은 내 가슴에 남은 영원한 빚이었으며 한 편의 드라마였고 우리들의 가족사였다. 빚을 다 갚았을 때는 이미 아버지는 아득한 점으로 내가 닿지 못하는 곳에 있었다.

오늘 새벽 아버지 꿈을 꾸었다. 나는 평생 아버지의 눈물을 보지 못했다. 사반세기가 넘은 지금에서야 처음으로 꿈 속에서 아버지의 눈물을 본 것이다.

돌밭 패랭이꽃으로 피어 있을까, 아버지의 뒤꼍 눈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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