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무슨 말이냐고 의아해 한다. 그 말은 직립인간이 네발 다린 동물보다 못하다는 말이라고 설명해 준다.
“저 양반, 이웃 소음에 벌금 10만원 나왔다던데 아는지 모르겠네.” 아내는 새벽잠을 설치게 하는 아파트 담너머 고함에 볼멘소리다. 그래도 동네 사람들이 다 좋다고 하는 걸, 저런 사람이 서너 사람만 돼도 좋을 텐데 하고 나는 중얼 거렸다. 지금 그가 핏대를 올리며 새벽을 가르는 것은 왜, 아무데나 쓰레기를 버리느냐는 것이다.
“개뿔 났다고 여기다 쓰레기 버리면 벌금 문다”고 써놨겠느냐는 것이고, 지정 장소에다 쓰레기를 버리지 않은 사람들과, 경고문을 형식적으로 써 붙여 놓고 뒤처리 하지 않는 관계당국을 싸잡아 독설을 퍼붓는 것이다.
나는 그가 누군지 잘 모른다. 손을 맞잡고 통성명을 나눈적도 없고, 이렇고 저렇고 얘기를 나눈 적도 없지만, 그래도 마주치면 목례 정도는 하고 지내는 사이다. 또한 무슨 전공을 해서 취득한 박사는 아니지만, 왜 그가 박사인지를 알지 못한다. 다만 동네 사람들이 그를 박사라 부르니, 나 또한 마땅한 호칭이 생각나지 않아 박사라 부르는 것이다. 그렇다고 직접 ‘박사”라고 대놓고 불러 본적은 없다.
그저 얘기 중에 그가 화제에 오르면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나는 그를 좋아 한다. 이런저런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수 없이 많다. 우리 동네가 이 만큼 깨끗해 진 것도 그 때문이다. 길가에 아무데나 주차 하는 사람, 담배꽁초나 휴지 버리는 사람 등 아무튼 상식에 어긋났다 싶으면, 신분이나 노소, 성별에 관계없이 그는 큰 소리로 훈계(욕설)를 하는 것이다.
그런 그와 오늘 아침에 맞닥뜨린 사건이 하나 있었다. 아파트에 나와서 큰 길로 나가는 골목에 제법 큰 뜰을 가진 집이 있었다. 그 집 정원에는 요사이 산수유, 목련, 개나리. 벚꽃이 색색별로 피어 있어 길가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는데, 담장너머로 장미꽃 가지가 길 가운데로 길게 나와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박 박사가 그걸 본 것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자르든지 아니면 가지를 묶어서 길 가운데로 나오지 못하게 하라고 말 한지가 서너 날 됐는데 그대로 방치해서 오늘 아침 자신이 가위로 가지를 잘랐다는 것인데, 이에 그 집 주인이 왜 남의 집의 것을, 어떻게 키운건데 하며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동네 사람들 까지 나와서 구경을 하는 걸 보니 제법 싸움이 많이 진행 된 것 같았다. 상대도 만만치 않았다. 나도 전설 같은(?) 방법을 동원하여 극적으로 싸움을 말렸다. 그는 돌아서는 내 어깨를 툭 치며 껄껄 웃었다. 힘 좀 있다고 여러 개, 단 하루 받는 날 뿐인 명예박사들 보다는 우리 박 박사에게 진짜 명예박사 학위를 주어야 한다고 나는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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