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충식 논설위원 |
그런 가운데 국가균형발전위에서는 몇몇 복수안을 놓고 한창 심의 중이다. 지역 낙후도가 공공기관 배치나 수를 결정짓는 절대 기준은 못되며 또한 충북에 소수를 배치하고 대전과 충남은 배제하면 균형발전에 꼭 합당하냐 하는 것도 재고할 여지가 있다.
실제 이를 역차별로 보는 견해가 만만찮다. 그러면서 대전시는 신설 기관 위주의 개별 유치라는 틈새전략을 짜놓았다. 충남도의 경우도 대상에서 제외되는 가설 자체에 불만인데 특히 행정도시와 원거리인 충남 서북권으로 갈수록 수혜지역에 번들로 묶인 것에 반발한다.
여기서 잊어서 안 될 것은 행정도시 건설과 공공기관 이전은 거스를 수 없는 지방분권적 체제로의 이행이라는 사실이다. 수도권 지자체인 성남, 수원, 안양, 의왕 등은 공공기관이 빠져나가는 대신에 양적 팽창을 억제하고 질적인 부분을 높여갈 방도를 찾아볼 때다.
더 이상은 서울의 발전이 지방 발전의 덜미를 잡는다든지 서울의 정체성이 서울의 특권에 발목 잡혀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나라 전체로는 공공기관 이전을 서울공화국이라는 족쇄를 풀고, 서울은 전국의 축소판이 아니라 개성 있는 도시로 변신할 절호의 찬스로 여겨야 한다.
회고해보면, 해방 전인 1944년 서울 인구는 98만 8537명이었고 한국전쟁 후인 1955년에는 157만명이었다. 올림픽 다음해인 1989년엔 1058만명의 초거대 도시로 발돋움했다. 이래저래 서울은 독립도시라기보다 인구 2100만명을 포괄하는 공룡도시가 됐고 상대적으로 지방엔 공동화가 따랐을 뿐이다.
도저히 풀기 어려운 듯 보이는 이 난제의 해답은 역대 정부들이 공공기관과 기업의 서울 입지를 유도해 집중을 방조했다는 결론에서 역(逆)으로 찾으면 의외로 쉬워진다. “중앙집권이 수도권 집중을 초래한다”는 그레고리 헨더슨의 명제를 뒤바꿔 “지방분권과 분산이 수도권 집중을 완화한다”는 새로운 명제를 실현시킬 시점인 것이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 생산유발 효과가 적다거나 한정된 자원을 왜 지방에 분산시키느냐는 지적이 틀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연한 분권형 국가와 역동적인 다극분산형 사회로 가자면 국토불균형 문제의 핵심 중 핵심인 수도권 집중부터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해묵은 논쟁에만 갇혀 있을 수는 없다. 초일류 경제대국 일본, 고속성장대국 중국, 잠재성장대국 러시아, 중진국 경제권인 동남아에 에워싸인 우리가 혁신경쟁(innovation race)에서 이기려면 결국 한반도 구석구석을 분산·분권형 발전 모델로 바꾸는 길밖에는 없다.
이 과정에서 갈등이 없을 리 없으며 그럴수록 이전 원칙과 기준을 확실히 가다듬어야 한다. 지역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고 지역 불균형을 푸는 마지막 열쇠라는 생각을 떨치고 대처했으면 한다. 원하는 기관이 오지 않아도, 50점만 되어도 수용해야 할 형편인 것이다.
바둑에서 한쪽은 부담 없고 다른 쪽만 부담이 되어 작은 패감도 다 받아주면서 느긋하게 즐기는 패를 꽃놀이패라 한다. 바로 공공기관 이전을 두고 각종 선거를 겨냥해 `꽃놀이패`로 갈 것이라는 예측도 나돈다.
그러나 공공기관 이전은 나눠먹기나 분열적 지방 지배가 아니다. 딱히 부작용이 우려되면 부작용을 없애면 될 일이고, 지방균형 발전은 허울좋은 장식품이 아닌 만큼 차별과 배제의 메커니즘을 버리며 이뤄내야 한다. 사람들이 걸어다니면서 길이 만들어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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