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는 여성이 남성 화가에 의해서 어떻게 다루어지고 누구를 위하여 에로틱한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를 19세기 후기인상파 화가로 잘 알려진 고갱, 드가, 툴루즈 로트렉의 작품을 통하여 간단히 살펴본다.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은 서양문화의 허위와 부조리를 비판하고, 문명의 세계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떠나 원시적인 생활의 자유와 진실을 찾아서 1891년 이후 타히티섬에서 여생을 보냈다. 그의 1899년 작품 ‘망고 꽃을 들고 있는 타히티의 여인들(Tahitian Women with Mango Bolssoms)’에서는 우아하고 젊은 두 타히티 여인이 풍요롭게 표현된 유방 바로 아래에 꽃쟁반을 들고 서 있다. 고갱에 의해 그려진 두 여인의 유방은 마치 그것으로부터 모든 좋은 것들이 흘러나오는 과일과 꽃에 은유되면서 고귀한 미학적 예술작품의 영역에 도달한다. 그러나 하나의 에로틱한 이미저리의 구현으로서 여성을 욕망을 일으키는 대상으로서 잘 익은 과일, 꽃에 비유하고 그것과의 유사성을 강조하는 남성의 에로틱한 연상에서 출발한 것이다.
에드가 드가(Edgar Degas 1834~1917)는 오페라 무희들의 춤을 테마로 리듬과 하모니에 따라 변화하는 다양한 형태들을 묘사했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 1864~1901)은 현실 고발에 관심을 두면서 매춘굴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카바레의 여성들을 그렸다. “매춘부들은 항상 박제(剝製)와 같다. 그러나 그녀들은 살아서 숨쉰다.”라고 그는 말하지만 1894년 작품 ‘물랭 가의 살롱에서’에서는 유흥업에 종사하는 이러한 여성들의 일이 정당한 노동으로 평가되기보다는 남성 구경꾼들이 보고 시각적으로 소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그려진다.
결국 19세기 미술은 대부분 남성의 요구와 욕망에서 남성을 위한 여성의 이미저리였으므로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모습은 노동의 주체이기보다는 제외된 주변을 장식하는 것처럼 취급되었다. 여성은 남성화가의 창조적 활동을 도와주는 누드 모델로서, 남성들의 노동 후에 휴식처인 술집의 접대부 혹은 카페의 여급으로서 도덕적 기준으로 볼 때 낮은 오락적 대상으로서 혹은 성적 대상으로 묘사되었다. 그렇다면 에로틱한 남성의 시각만이 존재하고, 에로틱한 여성의 시각은 결여된 것인가? 미술 비평가 린다 노클린은 “19세기에는 여성의 이미지를 재현하지 않은 에로틱미술이란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 이전과 그 이후에도 매우 드물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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