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전세계 영화시장의 85%, 방송 프로그램 수출시장의 75%를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문화다양성협약’을 무력화시켜 세계시장을 통째로 장악하려고 한다. 스크린 쿼터에 의해 국산영화가 연간 106일 이상 의무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나 미국은 투자협정(BIT)의 조건으로 의무상영 기간을 2007년 1월까지 73일로 축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스크린 쿼터의 축소, 폐지는 그렇게 간단하게 결정되어질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브라질의 경우 스크린 쿼터를 130일에서 20일로 줄이고 나서 현재는 자국영화점유율이 5% 조차도 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재 실정이다. 그리고 멕시코의 경우 110일의 스크린 쿼터를 1994년부터 해마다 5%씩 줄여서 98년에 완전히 없애버렸다. 이 때문에 연간 80편 가량 제작되던 영화가 연간 10편 정도의 제작으로 영화제작이 줄었고 30%에 달하던 시장점유율이 스크린 쿼터 폐지 후 5%로 대로 떨어져버렸다.
스크린쿼터가 추구하는 것은 오직 한국영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할리우드 영화의 독과점을 막기 위한 방지책이지, 결코 한국영화를 살리는 보호 장벽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 한국영화가 발전한 것은 시네마서비스와 같은 대형 영화 배급세력이 영화의 안정적인 유통을 보장하고, 영화학과를 졸업한 우수한 신진인력이 시장으로 쏟아지며 다양한 작품적 시도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영화가 최근 한국에서 외면 받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2003년에 할리우드에서 선보인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대다수는 안이한 기획의 속편에 불과한 것이 태반이었고, 아이디어와 소재의 고갈에 허덕이는 할리우드 영화 대신, 관객은 한국영화를 선택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단지 한국영화가 시장 점유율이 할리우드 영화보다 높아서 자생력을 갖추었다고 말하고 시장을 전면 개방한다는 것은 스스로 한국 영화의 숨통을 조르다가 결국 한국영화를 죽이는 결과를 낳게 할 것이다.
스크린 쿼터는 미국과 한국의 밥그릇 싸움이 아니다. 문화생존의 마지막 보루이다. 한국영화를 죽인다는 것인 극단적인 논리 비약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과의 문화적 대결구도 속에서 스크린쿼터 축소, 폐지를 감행하게 된다면 경제적 종속관계를 넘어서 문화마저도 미국에 종속 돼버릴 것이다.
문화는 나라의 정신이라고 한다. 디지털시대, 정보화시대라는 말로 대표되는 현대사회에서 영화야말로 문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의 핵심인 영화를 지켜내지 못한다면 나라의 정신을 잃고 말 것이다. 정신이 없는 육체는 살아있는 시체와 다를 바 없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