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고구려는 성의 나라라고 한다. 그런데 이제껏 해 왔던 사진 위주의 전시라면 그곳에서는 과학이나 기술을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러나 이 성들이 어떻게 15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견고하게 남아 있을까? 그것은 바로 우리 선조들의 독특한 축조기술에 있다. 지금도 절에 가 보면 주춧돌을 생긴 그대로 쓰고 기둥을 깎아 세운 것을 볼 수 있고 지금도 우리 고유의 건축을 하려면 바로 이 기술을 그대로 쓰고 있다. 이 기술은 바로 그랭이 기법이라는 것인데 돌이 빈틈없이 잘 맞도록 잘 깎아 맞추는 기법이며 또한 높이 쌓을 때 아랫돌 보다 윗돌을 약간씩 들여 쌓는 들여쌓기를 하였다. 여기에 바로 고구려인 나아가 우리 선조들의 과학슬기가 넘쳐들어 이제까지 그 모습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이다.
고분벽화에 보이는 견우와 직녀, 농업신에서 당시 생업이었던 농업기술의 바탕을 볼 수 있는데 주몽(동명성왕)이 동부여에서 졸본부여로 옮겨와 고구려를 건국할 때 그 어머니 유화부인이 비둘기 뱃속에 넣어 보내준다는 오곡종자 이야기에서도 농업을 바탕으로 굳건한 경제력을 갖추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농업사회에서 견우처럼 남자는 농사를 짓고 직녀처럼 여인은 옷감을 짜는 일에 주력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보아도 빠지지 않는 화려한 옷 그림에서 훌륭한 직조기술을 읽어 낼 수 있다. 이러한 농업기술과 직조기술을 바탕으로 가꾼 경제력을 바탕으로 과학산업의 발전을 꾀하였다.
특히 야철신(대장장이), 제륜신(수레장인)을 통해 보면 지금도 선진국의 산업인 철강기술과 자동차산업을 찾아 볼 수 있다. 야철신이 말해 주고 있는 제철, 제강기술은 강력한 무기와 철갑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군사력과 군사기술의 한 단면을 보게 해 준다. 제륜신은 수레바퀴를 만드는 장인인데, 원통을 16등분하고 불에 달구면 늘어나고 식히면 줄어드는 쇠의 성질에 밝아 수레바퀴에 쇠테를 씌우는 과학슬기를 발휘하였다.
수레에서는 지금으로 따지면 신속한 수송을 바탕으로 하는 물류와 물동량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읽어 낼 수 있으며, 2배에 가까운 수레의 폭은 넓은 도로의 확보를 예견해 주는 것으로 당시 토목기술 또한 대단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농업과 야철, 수레, 토목, 군사기술을 바탕으로 한 당시 고구려가 이룩한 대제국의 건설은 필연적인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울러 고구려를 건국한 동명성왕이 주몽이라 불렸듯이 활도 맥궁이라 하여 작으면서도 아주 강력하여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활의 자리를 지금도 차지하고 있으며 개마무사의 발걸이(등자)는 당시 서구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발명품으로 강력한 기마전술을 펼치는 핵심요소가 되었다. 또한 유리에게 내려졌던 수수께끼가 바위 위의 일곱 모난 소나무 밑에서 부러진 칼을 찾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바로 주춧돌 위의 일곱 모난 기둥이었다. 여기에서도 원을 7등분하는 고등수학을 찾아 볼 수 있다.
이렇듯 과학적인 고구려인들의 문화유산을 중국은 동북공정이라는 미명 아래 자기나라 변방의 유물쯤으로 치부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고구려대탐험전을 통해 우리 선조들의 과학적 슬기가 깃든 문화유산이 오늘날 우리들의 삶 속에 어떻게 이어져내려오는지 확인하는 기회를 갖는 것은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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