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단상]아름다운 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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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아름다운 쪽지

  • 승인 2005-04-13 00:00
  • 최진규 충남 서령고 교사최진규 충남 서령고 교사
대학입시를 목전에 둔 고3 학생들에게 개학은 기나긴 승부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나 다름없다. 어찌됐든 지금부터는 한 순간의 방심도 허락되지 않는다. 그러니 아이들이나 선생님들의 표정엔 마치 전선에 임하는 병사들처럼 긴박감이 감돌 수밖에 없다.

1교시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오자 컴퓨터 화면에 예쁜 쪽지가 도착해 있었다. 쪽지의 발신인은 내가 맡고 있는 옆반의 이 선생님이었다. 연속해서 고3 담임만 맡다보니 연애할 시간이 없어 장가를 못간다며 틈만나면 장탄식을 늘어놓더니 올해 또다시 고3 담임을 맡게 됐으니 어쩌느냐며 방금전까지 투덜대던 후배 선생님이다.

쪽지의 내용은 이랬다. 지난해 백혈병으로 입원했던 아이가 1년여의 치료를 마치고 올해 다시 학교에 복학했고 마침 이 선생님의 반으로 배정되었다고 한다. 오랜 투병 생활로 인한 학교생활의 공백은 차치하고라도 아직 정상이 아닌 몸상태로 인하여 주변 사람들의 배려가 무엇보다 시급한 상황이었다.

“안녕하십니까. 3학년 4반 담임입니다. 제가 이렇게 편지를 올린 이유는 저희 반에 작년 한해 동안 골수백혈병으로 치료를 받던 ‘ㅇㅇㅇ’이라는 학생이 ‘복학’을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현재 치료는 완료된 상태나 앞으로도 정기적으로 꾸준한 검사를 받아야 하고 지속적으로 변화 상태를 보아야 하는 매우 조심스런 상황입니다. 따라서 저희 반 수업에 들어오시는 선생님들 뿐 아니라, 학교 전체 선생님들이 ‘ㅇㅇ’이를 대할 때 더 관심있게 지켜봐 주시고, 따뜻하게 대해 달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직접 찾아뵙고 말씀드리지 못하고, 이렇게 편지를 올리게 된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3학년 4반 담임 올림.”

문구 하나 하나에 이 선생님의 정성과 사랑이 가득 담겨 있었다. 마침 다음 시간이 이 선생님 반 수업이었다. 종이 울리고 수업에 들어가자 가운데 맨 앞자리께 모자를 깊게 눌러 쓴 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명찰을 보니 쪽지속의 주인공인 ‘ㅇㅇ’이었다. 독한 약물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몇 가닥 남지않은 머리카락을 가리느라 모자를 쓰고있는 듯 했다. 모자 사이로 비친 모습에서 아직도 병마의 흔적이 남아있는 듯 했으나 담임 선생님의 배려 탓인지 표정은 무척 밝아 보였다.팽팽한 긴장감 속에 맞이한 개학 첫날, 노총각 이 선생님이 보낸 쪽지를 통하여 자칫 형식적인 관계로 흐르기 쉬운 스승과 제자 사이의 애틋한 정을 확인할 수 있어서 무척 행복한 하루였다.

당해보지 않고서는 그 심정을 모른다는 고3. 아이들은 올 한 해 동안 많은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다. 나도 이 선생님처럼 우리반 아이들에게 더울 때는 시원한 나무 그늘로, 추울 때는 따뜻한 난로가 되어 그들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동반자가 되어볼 것을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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