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오랜 거래 관계를 통해서 친구가 되면 바를 찾는다. 반면에 한국 비즈니스맨들은 초면에 저녁을 함께하고, 소주로 가벼운 입가심을 한 다음, 3차로 주점에 옮겨서 질펀하게 유흥을 즐긴 후, 신뢰(?)를 쌓았다고 생각되면 거래를 시작한다. 찻수가 올라가면서 상대방에 대한 호칭은, 사장님, 부장님에서, 선배님 후배님으로, 그리고 형님 아우로 변화한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형님 아우가 되지 않으면 거래는 성립되지 않는다.
왜 한국인들의 상거래 방식은 미국인들과 이렇게 다르게 나타날까? 한국인들은 신뢰학자들이 말하는 ‘두껍고 협소한 신뢰’에 익숙해 있다. 반대로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신뢰’에는 익숙해 있지 않다. 미국인들과 한국인들 모두 친분을 가진 내부집단인 가족, 친척, 친구들에 대해서는 높은 신뢰수준(80~90%)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외부집단에 대한 두 국민들의 신뢰수준에는 극명한 차이가 있다. 미국인들이 외부집단으로 판단되는 낯선 사람, 외국인 등에 대해서 40~45%의 높은 신뢰를 보여주는 것에 비해 한국인들은 5~7%의 낮은 신뢰를 보여주고 있다. ‘두껍고 협소한 신뢰’가 많은 사회에서 길거리에서 만난 낯선 사람을 신뢰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낯선 사람에 대해서는 우선 경계하고 의심하는 태도가 일반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경제거래를 할 때에도 한국인들은 형님 아우를 만들어야 편안해 한다.
국가주도의 개발경제 시대에는 ‘협소한 신뢰’가 경제거래에 긍정적인 영향을 행사하기도 했다. 게다가 많은 사회학자들은 한국인들이 미국 이민사회에서 성공하는 여러 가지 이유 중의 하나는 친척, 친구 그리고 동창들의 연줄을 통하여 사업자금을 확보하고, 사업정보를 획득하며, 나아가서 상거래를 쉽게 확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두껍고 협소한 신뢰’가 거래비용(transaction cost)을 줄여줌으로써 경제발전에 기여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비즈니스맨은 상거래 환경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경제는 투명하고 열린 시장경제로, 그리고 경제조직이 대규모화 국제화하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경제 환경의 변화 속에서 모든 거래 상대자를 ‘형님’ ‘동생’으로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이제 술값을 줄이고 낯선 사람들에 대한 지나친 경계를 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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