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그마한 편견이야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겠지만 지나친 편견은 전혀 딴판으로 판단을 하게 하고 자칫 잘못하면 세상살이를 끝내 구렁텅이로 몰라 넣을 수도 있다. 그러기에 꼭 같은 뜻은 아니지만 이런 부류의 생각이나 행동을 경계하는 말이 적잖이 생겨났다. 곧, ‘선입견을 버려라’나 ‘색안경을 끼지 마라’는 글귀도 있고. ‘고정 관념을 깨부숴라’ 나 ‘내 잣대를 들이대지 마라’라는 말도 있으며, 나아가 ‘나를 벗어 던져라’라는 문장까지 있다.
우리는 어쩌면 ‘시’와 ‘시인’에 대해서도 심한 편견을 갖고 있는 듯하다. 꽃이나 나무를 소재로 자연을 읊은 것이 시이고, 사랑이나 그리움을 들먹여야 그럴듯한 시인으로 여긴다. 그러나 나는 이제 지난날의 편협한 생각에서 벗어나, 시의 영역이 훨씬 넓어지고 다양한 분야에서 종사하는 시인들이 많이 탄생하기를 바란다.
망원경이나 현미경을 들여다보고 나서 펜을 잡으려는 문인들이 늘어나고, 스쿠버다이빙을 즐기거나 행글라이더를 타고 난 뒤, 글씨 쓰는 기계 앞에 앉아 글자판을 눌러대는 글쟁이가 늘어날 때 또 다른 시의 세계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지금부터 철근과 콘크리트를 노래하는 시가 시집에 실리고, 그것으로 만든 긴 다리와 높은 빌딩을 읊조리는 시가 문학잡지에 등장해도 된다. 또한 아스팔트나 고속철도를 재료로 글을 짓고, 자동차를 만드는 현장을 음미하고 공장굴뚝을 글감으로 삼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우리는 일찍이 나사를 쓸거리로 택해 빼어난 시를 완성하고, 연탄재를 소재로 하여 바람직한 삶을 깨우치는 작품을 보았다. 따라서 합성수지를 글에 올리고 프로판가스를 제재로 삼아 노래하는 시가 얼마든지 태어날 수 있다.
이렇게 과거에 우리가 시에 대해 지녔던 생각이 바뀔 때 현대인에게 시는 너무나도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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