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친하게 지내는 고향 후배 한 명이 은행에 다니다가 1년 전에 퇴직을 했다. 갓 50이 된 그는 전업주부인 부인과 대학 1년생 아들, 고2 딸을 거느린 가장으로서,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교육비가 들어갈 삶의 고비인데, 직장에서 퇴출을 당한 것이다. 그는 이발 체인점을 해 볼까, 24시간 편의점을 해 볼까, 식당을 열어 볼까, 등등 갖가지 궁리를 하다가, 최근 아파트 경비원으로 취업을 했다. 은행 지점장으로 상당한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여유를 누리던 그가 보수도 좋지 않고 근무환경도 열악한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할 결심을 한 데에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내 동창들 중에 내로라 하는 굴지의 대기업체에 다니던 친구들도 대부분 40대 전후반에 퇴출을 당했다. 그 중 한둘은 자영업을 하고 있고, 나머지는 실업자 신세인데, 일을 하지 못하는 데 대한 자괴감과 가장(家長)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자아정체감의 상실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 사업에 실패하고 알코올 중독이 되어 아주 폐인이 된 친구도 있다.
한창 일할 나이에, 그리고 가정적으로도 바야흐로 지출이 가장 많아지는 인생의 고비에 직장에서 쫓겨나, 할 일을 잃어 버리고 일정한 수입도 없다는 것은 참으로 치명적이고 절망적인 일인데, 이러한 조기 퇴직이 이미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현상이 되어 버렸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최근 대학을 졸업한 우수한 인재들이 오랫동안 높은 보수 때문에 각광을 받았던 대기업이나 금융기관보다 신분이 안정적인 각종 공사(公社)로 몰리는 현상이나, 그간 사회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던 교직이나 공무원이 최근 인기 직업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은 모두 이러한 조기퇴출 현상과 관련이 있다.
국가적 차원의 인력 관리 차원에서 볼 때에도 지나치게 빠른 조기퇴출 현상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조기퇴출되는 인력들이 대부분 고등교육을 받은 전문인력들인데, 장기간의 교육을 통해 양성한 인재를 제대로 활용하지도 않고 도태시킨다는 것 자체가 비효율적일 뿐이다. 더구나 과학·의학의 발달로 평균 수명은 자꾸 늘어나는데, 몇 십 년을 일하지 않고 살아가는 인구가 이렇게 자꾸 증가한다면 장차 우리 사회가 그들을 위한 천문학적인 복지 비용을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물론 이러한 조기퇴출 문제는 한 개인이나 기업, 기관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국가와 사회, 기업체의 사(使)와 노(勞), 국민 전체가 이러한 현상의 심각성을 깊이 인식하고 공감대를 형성해서, 지혜로운 해결 방안을 도출하고, 시행해야 한다.
인재의 조기퇴출 문제는 국가 차원의 과감한 정책적 접근이 시급한 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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