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자기 점검의 생활을 기피하는 것은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일이다. 파스칼은 “인간은 갈대와 같은 연약한 존재이지만 생각하는 갈대이기에 존귀한 존재”라고 하였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그것은 생각이 있는 것이요, 양심이 있는 것이다. 여기서 도덕과 윤리가 생겨진다. 그러나 생각을 포기하고 양심을 포기한 자리에는 도덕도 윤리도 있을 수 없다. 생각을 포기하고 양심을 포기하는 것은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동물과 같은 삶을 살아가겠노라는 이성 없는 동물선언과 같은 것이다.
일찍이 슈바이처가 말하기를 “현대의 위기는 생각하기를 기피하는 사색의 빈곤”이라고 했다. 사람은 자기를 알아야 한다. 성경에서 예수님의 가장 혹독한 질책을 받았던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이었다. 자신들이 가장 의롭다고 생각하고 언제나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고 판단하는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을 회칠한 무덤같은 사람들이라고 책망하셨다.
이솝의 우화 가운데 ‘여우와 포도송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여우가 배가 고파 먹을 것을 찾다가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포도넝쿨을 발견한다. 여우는 군침을 삼키면서 포도나무에 다가간다. 그러나 포도송이가 달려있는 포도넝쿨은 꽤 높이 있어서 쉽게 포도송이를 따지 못한다. 몇번이고 몇번이고 뛰어 보지만 허사다. 여우는 점점 힘이 떨어져 더 이상 뛰어 오를 수 없게 된다. 포도송이를 끝내 따지 못한 여우는 화를 내면서 그곳을 떠난다. 떠나면서 투덜대는 여우의 말은 “저렇게 신 포도는 나같이 점잖은 여우가 먹을 것이 못되지. 저런 신 포도는 거저 주어도 안 먹는다”라며.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의 진실은 숨긴 채 드러나는 현상에서 자신의 부족이나 약점을 변명하고 합리화 시킬 때가 참으로 많다. 자신의 역량이 부족해서 포도송이를 따지 못한 여우가 포도가 시기 때문에 포도를 먹지 않는다고 하는 것과 같이 우리는 자신의 부족과 모자람을 생각하기보다는 환경을 탓하고 조건을 말하고 다른 사람을 탓할 때가 참으로 많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 자신의 역량이 모자라서 사업을 발전시키지 못하는데도 사람 탓하고 조건 탓하고 자본 탓을 한다면 웃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언제나 자신에 대해서 좀더 솔직하고 진실해야 한다. 실제의 삶은 놀부이면서 언제나 흥부인양 위장된 삶을 살아오지 않았는지, 실제로는 불의와 거짓으로 얼룩진 삶을 살아오면서 가장 정직하고 의로운 삶을 사는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오지 않았는지 자신을 점검하고 자신을 알아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내어 놓을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부족과 모자람이 결코 부끄러움일 수 없다. 부족과 모자람이 많아도 하나님은 진실을 더 기뻐하신다. 자신을 아는 지혜가 필요한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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