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 최선을 다한 경기라면 그 결과까지도 포용할 줄 아는 단계에 이미 이르러 있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사우디 아라비아와의 결전에서 우리의 국가대표 선수들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고 상대 선수보다 한 박자씩 늦었고, 당연한 결과로 2-0 이라는 스코어로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러나 이것은 여러 번 있는 시합의 하나일 뿐이다. 앞으로 쿠웨이트와 우즈베키스탄과의 시합을 잘 치른 다음 8월17일 사우디를 서울 상암 구장으로 불러들여 기분 좋게 이기면, 이번 패배의 아쉬움도 풀고 또 2006년의 독일 월드컵에도 당당히 출전하는 쾌거를 이룰 수가 있다. 즉 다음 기회를 충분히 도모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부터 얘기하려는 -대도(大盜) 조세형에 이르면 상황이 달라진다. 조세형은 1960년대 우리 사회의 ‘어두운 하늘의 별’이었다. 서울 시내 부유층과 요인들의 저택을 상대로 뚫고 들어가 수천만원대에 이르는 물방울 다이아몬드 등을 털어, 결과적으로 당시의 군부정권의 부정부패가 어느 지경인가를 국민들에게 알리고 ‘의적’으로 까지 떠받들어지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는 특수절도, 절도, 야간주거침입을 거듭하여 사법당국의 거듭된 심판을 받았음에도 오히려 묘한 대리만족의 공감대를 얻으며, 대도(大盜)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국민적 동정을 얻는 행운까지도 누렸다.
25세 때인 1963년부터 절도행각을 시작한 조세형은 드라이버 하나만으로 혼자서 부유층과 고위인사의 집을 13차례나 털었고 훔친 돈의 일부를 빈곤층에게 나누어주는 선행을 베풀었다. 이런 면 때문에 교도소에 갇힌 그가 탈주소동을 벌이고 1988년 11월 청송교도소에서 출소하여 신앙생활을 하며 본적지를 독도로 옮기고 사설경비업체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할 때에도, 국민들은 ‘역시 대도는 노는 물이 다르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대도 조세형이 우리를 한숨쉬게 한 것은, 2000년 12월에 느닷없이 일본의 한 가옥을 털다가 경찰의 총격으로 붙들렸을 때였다. 그리고 지난 주말에, 그 대도 조세형이 서울 시내의 한 주택에 침입하여 165만원 상당의 금품과 45만원의 금품을 훔치다가 경찰에 체포되어 다시 자신의 이름에 찬물을 끼얹었다. 여기에 더 실망스러운 것은, 67세의 조세형이 붙들리면서 자신의 이름을 가명으로 대며 ‘노숙자’라고 신분을 속인 점이다.
범죄를 미화하자는 뜻은 아니지만, 기왕 일본에 건너가 털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소시민의 집이 아니라 일본의 재벌이나 또는 독도하고 관련이 있는 고위 인사의 집을 노리고, 또 여의치 않아 붙들렸을 때에도 이봉창 의사나 안중근 의사를 거명하면서 자신의 목적이 한낱 재물탈취에 있지 않음을 웅변 했더라면 -그의 대도 위상은 오히려 더 올라갔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의 대도 조세형은 우리 국민들에게 큰 아쉬움을 준다. 그가 일반 시민의 집을 털었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대도로서의 자존심을 포기 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이번의 뉴스를 접하면서, 장군이 병사의 주머니를 뒤지다가 잡힌 듯한 ‘아쉬움과 실망’에 젖은 국민이 여럿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안타까운 그 이름 ‘대도 조세형’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